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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청와대 공간을 다시 생각함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성급한 일반화일 순 있겠다. 하지만 해외 정상회담을 거듭 취재하며 확립한 이론이다. 대통령이 머무는 공간과 민주주의는 대체로 반비례한다는 거다. 대통령이 국민에 비해 과도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비민주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대통령과 참모 사이, 대통령과 국민 거주 공간 사이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만일 대통령이 일하다 문득 창 밖을 내다보았을 때 일반인 누군가를 볼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일 가능성이 크다.



 칠레의 대통령궁 ‘라 모네다(Palacio de La Moneda)’. 가설이 이론으로 바뀐 곳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17년 장기독재를 떠올리며 외진 곳에 있는, 주변을 압도하는 웅장한 건물을 상상했었다. 권위를 드러내는 용도로만 적합한 상징물 말이다.



 실물은 상상 밖이었다. 주변 건물과 다를 바 없었다. 19세기 초 조폐국용으로 건설됐다는 게 이해됐다. 대통령궁 앞 광장에선 사람들이 편한 자세로 대통령궁을 바라보곤 했다. 대통령궁 안의 분위기도 바깥 못지않게 자유로웠다. 타국의 기자도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워 물고 대통령궁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피노체트 이후 20여 년간 축적된 민주주의가 보였다.



 건축가 승효상씨가 “워싱턴의 백악관과 런던의 다우닝가 등이 시민과 같은 눈높이에 그 건축공간이 있는 까닭에 저들은 탄탄한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 일이 있다. 오늘의 칠레가 그랬다.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는 부(負)의 사례라 할 만하다. 휑한 왕복 16차로 도로를 30분간 달린 끝에야 대통령궁이 나왔다. 철제문을 통과한 뒤에도 띄엄띄엄 있는 정부 건물들을 지나야 했다. 대통령궁에서 내다보면 대형 분수와, 각각 출구와 입구로 사용되는 대형 현수교 두 개, 그리고 야산이 보였다. 네피도 전체가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최근 세계가 미얀마 정부의 개방 조치를 지원하는 데 대해 아웅산 수치 여사가 “세계의 도움이 특정 그룹, 특정 개인, 특정 정부에만 이용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고 경계하는 연유를 알 만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안타깝게도 후진국형 공간에 가깝다. 청와대 인사도 “국격(國格)에 비하면 창피하다”고 토로할 정도다. 1990년대 초 ‘임금의 거처’란 개념으로 본관을 지었다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마치고 수십 걸음을 뒷걸음쳐 물러나다 다리가 꼬여 넘어졌다는 게 YS 시절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도 “모 수석이 심야에 사무실에서 머리를 식힐 겸 스포츠중계를 틀었다가 TV소리가 대통령의 잠을 방해하는 것 아닐까 걱정해서 껐다더라”는 얘기가 나온다. “일개 비서관이 대통령을 어떻게 독대하느냐”란 주장에 대해 일반인은 갸웃하지만 청와대 사람들은 수긍한다. 여전히 ‘구중궁궐’인 거다.



 DJ 이래 대통령은 그래서 청와대 공간에 불만이 많았다. 적어도 집권 초기엔 그랬다. 참모와 멀어, 결과적으로 국민과 멀어질 수 있다고 걱정한 거다. DJ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본관을 백악관처럼 바꾸겠다고 공언했었다. 결국 못했다. 노 대통령은 대신 비서동을 짓고 그곳에 집무실을 마련했다. 하지만 임기 말로 갈수록 비서동 대신 본관에 머물곤 했다. 참모와 마주하기보다 ‘역사와의 고독한 대화’를 택했다. 이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는 사이 “청와대란 공간 탓에 대통령의 사고도 행동도 권위적이 된다. 대통령이 말년에 비참한 건 그런 건물에서 5년을 살아서다”(승효상)란 진단이 여전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제라도 청와대 공간을 바꾸자. 대통령과 참모, 국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자. 대통령 한두 명 보고 말 대한민국이 아니지 않은가. 다소나마 좋은 대통령이 되게 할 방법이라는데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비서동 두 곳이 재난위험시설 D등급이란다. 돈이 들어가게 돼 있다. 기왕 쓸 바엔 더 쓰자. 우린 불통의, 그래서 실패한 대통령을 너무 많이 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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