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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룡이 다툰 1997년 … 경선은 흥행, 대선은 패배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이한구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심재철 최고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새누리당은 오는 8월 20일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오종택 기자]


새누리당의 역대 대통령 후보 경선은 흥행 면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다.

새누리 대선후보 경선의 역사



1997년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은 대선 1년 전부터 ‘9룡(龍)이라고 불리는 9명의 주자가 경쟁했다. 이회창·이인제·이수성·이홍구·김덕룡·최형우·이한동·김윤환·박찬종 후보 등이다. 결국 6명(이회창·이인제·이수성·김덕룡·이한동·최병렬)이 최종 경선에 참여했고, 경선은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이회창 후보와 반(反)이회창 연합(이인제·이수성·김덕룡·이한동) 구도로 전개됐다. 1차 투표에서 이인제 경기지사가 반이회창 주자 가운데 돌풍을 일으키며 2위를 했고, 이회창 후보는 1위를 했지만 과반을 얻지 못해 둘은 결선투표까지 벌였다. 결국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후보의 바람을 잠재우면서 승리했고, 지지율은 50% 안팎까지 치솟았다.



  “정치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평가까지 받으면서 경선 흥행엔 성공했으나 대선 승리로 직결되진 않았다.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문제가 불거지고, 이인제 지사가 불복하고 탈당하면서 대선에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이겼다.



 2002년 경선은 상대적으로 김이 빠졌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는 이회창·최병렬·이부영·이상희 후보 4명이었으나 ‘이회창 대세론’에 의해 싱겁게 승자가 정해졌다. 반면 새천년민주당은 국민 50%와 당원·대의원 50%를 혼합한 국민경선으로 대대적인 흥행몰이를 했다. 결국 드라마 같은 경선으로 이인제 후보를 꺾은 노무현 후보는 한때 지지율을 60% 가까이 끌어올렸다.



 2007년 경선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기면 대선도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초박빙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면서 관심이 고조됐었다. 양측은 경선 룰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끝에 대의원, 책임당원, 일반국민선거인단, 여론조사를 각각 2:3:3:2로 혼합한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했다. 당원과 대의원, 국민이 참여한 현장투표에선 박근혜 후보가 432표를 앞섰지만 여론조사를 환산한 표로 2884표를 더 얻은 이명박 후보가 역전했다. 대선 본선에선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 쉽게 압승을 거뒀다.



 새누리당은 1997년과 2007년에 대선 경선 흥행에 성공했지만 본선 성적표는 1승1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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