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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제위기, 1997년 외환위기와 닮았다"

본지 연재 회고록 『위기를 쏘다』를 펴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의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해 “1997년의 외환위기와 닮았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멀리서 전쟁이 터진 것 같은데 막상 눈앞에 적(敵)이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이니 무작정 총질을 해댈 수도 없다. 그러니 일단 총탄(추가경정예산)을 아끼는 수밖에. 지금 정부의 스탠스다.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포연이 자욱하던 경제 최전선에서 금융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이헌재 전 부총리는 걱정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위기 징후가 보여요.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닮았어요. 눈에 보이게 해외 쪽 상황이 안 좋은데, 총선·대선까지 겹쳤어요. 15년 전에도 그랬지요.”

중앙일보 연재 이헌재 회고록 『위기를 쏘다』가 진단한 한국경제



 선거철이면 나가는 정부가 대책을 쓰기 힘들고,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책은 더 어렵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특히 가계부채에서 위기의 기미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가계부채는 금융 대책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며 “주택·건설을 포함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연재되던 이헌재 전 부총리의 회고록이 『위기를 쏘다』(중앙북스, 396쪽, 1만8000원)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이헌재가 전하는 대한민국 위기 극복 매뉴얼’이란 부제가 붙었다. 책에서 전하는 가계부채 대책은 이렇다. “지금 금융 당국은 경직돼 있어요. 탄력적인 대응을 못합니다. 너무 죄거나 풀지 않되 연착륙의 묘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외환위기 당시 외채협상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스를 보면서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했나’ ‘그리스는 우리랑 다른 게 뭔가’. 그리스는 국제금융계 생리를 압니다. 그러니 배짱도 부립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선언)을 각오했어야 했습니다. 당시 그런 주장도 하고, 계산도 해봤어요. 견딜 만하더군요. 그러나 DJ 정부는 ‘금리 불문, 어떻게든 갚는다’ 쪽으로 외채협상 가닥을 잡았어요. 복기해 보면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이견은 있다. 그리스는 유로존 위기의 중요한 고리다. 세계 경제(GDP)의 1%도 안 되는 그리스 총선을 머나먼 아시아의 한국 경제관료가 밤새 지켜봐야 하는 것도 이래서다. 과연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그리스만큼 주목받는 대상이었는지 갸웃거리는 이들도 많다. 그래도 저자의 말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꽤 될 것 같다. 외환위기를 같이 당했지만 정반대의 길을 갔던 말레이시아도 있었으니까. 개방화와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독자생존의 길을 택했던 말레이시아도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저자는 스스로를 ‘용병 소병대장’이라고 표현했다. 금감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일한 2년 반 동안 DJ를 독대한 것은 꼭 한 번뿐이었다. 그래도 저자는 “끌까지 날 기술자로 대했던 DJ이지만 국정 운영엔 본받을 점이 많았다. … 그 살벌했던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DJ는 한 번도 개인적 청탁을 하거나 정책에 대해 간섭한 적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실명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읽는 맛을 더한다. 제일은행 매각과 관련해 이기호 당시 경제수석 등에게는 날 선 비판을 했다. 김우중 회장과의 사연도 흥미롭다. 대우 파산에 얽힌 각종 음모론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로 대우의 몰락을 증언했다.



 자기중심적 서술이라는 회고록의 한계를 깨기 위한 시도도 눈에 띈다. 은행 구조조정을 서술하면서 정책수요자 격인 당시 은행장 등의 목소리를 ‘잠깐 인터뷰’로 담았다. 이왕이면 당시 외환위기의 ‘죄인’으로 몰려 주눅 들어 있던 다른 관료의 시각도 담았으면 더 좋았겠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이헌재 팀이 ‘스왓(SWAT·특수기동대)’처럼 상황을 장악해 나갈 때 이를 숨죽이고 지켜보던 과천 관가의 분위기도 자못 궁금하다. 과천에서 경제정책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가장 큰 아쉬움은 기록의 부재였다. 물론 남덕우·김용환·강경식·강만수 등 훌륭한 회고록을 남긴 분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기록물을 남기지 못했거나 기껏해야 장관 시절 연설문을 모아 놓은 책을 펴내는 정도였다. 이런 점에서 이헌재 회고록 『위기를 쏘다』가 반갑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경제는 생물이자 역사입니다. 돌고 돌죠. 경제정책도 그래요. 다 생장의 과정을 겪지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책은 없어요. ‘과거에서 배워 미래를 살찌운다’가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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