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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찮은 인터넷 서점의 '승리'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논리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인터넷서점에 도서공급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당사자 간에 합의가 없으면 정가제를 강요 못한다는 것이 현재의 경기 규칙이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경기 규칙을 정면으로 어겼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있다. 그간 출판 유통계에서 벌어져 온 일이 그렇다. 대형서점들과 대형출판사들이 주도하여 인터넷서점에 도서 공급을 중단하고, 인터넷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출판사의 책을 대형서점 진열대에서 철거해 버렸다.



이런 일들은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 행위로 공정거래법이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러한 부당행위에 시정명령을 내려 언론에 널리 보도되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1백20일만에야 겨우 내려진 시정명령이었다. 그 1백20일 동안 인터넷서점에 대한 불법적인 공급 중단은 아무런 제재 조치도 받지 않은 채 거침없이 시행되었다. 책 공급이 끊어진 인터넷서점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알라딘을 제외한 대부분이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여 할인정책 포기를 약속해야 했다.



뒤늦게나마 시정명령이 내린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앞으로 또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점이다. 출판 유통계는 물론이고 온라인 산업이 재래산업을 앞지르게 될 많은 분야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줄을 이을 수 있다.



그때마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상황이 재연되어 1백일씩, 2백일씩 질질 끌면서 시장을 어지럽히도록 놔둔다면 정보화 강국의 구호는 공염불로 끝날 것이다.



정부에 특별한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완충의 여유가 없으며, 우리 시장은 치고 박고 싸우는 벌거벗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이다. 이 단계에서 정부의 역할이란 ‘페어 플레이’ 정신이 관철될 수 있도록 심판 역할을 잘 해주는 것이다.



호각을 불 때는 불고 옐로 카드를 줄 때는 주고 퇴장을 시킬 때는 시켜야 한다. 지금으로선 승패가 공정하게 결판나는 것만 해도 커다란 진보다. 담합이니 분식회계니 불법대출이니 해서 인위적으로 승부를 조작하려는 일체의 행동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이런 기반 위에서만, 갈길 바쁜 사람들의 뒷다리를 잡지 않으면서도 낙오되는 사람들을 거둬줄 수 있는, 여유롭고 정의로운 시장경제가 가능할 것 같다.



이번에 인터넷서점의 할인 판매를 막으려던 출판사와 오프라인서점의 경우를 보자. 문제의 발단은 한 대형서점에서 비롯됐다. 시내 대형서점의 사장이 우리나라 주요 출판사 사장들을 불러모아 놓고 ‘할인 판매 인터넷서점에 책을 계속 공급하면 우리도 할인 판매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할인 판매를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지, 그걸 빌미로 경쟁자에 대한 도서 공급을 중단시키도록 충동했으니 페어 플레이를 했다고 보긴 힘들다. 이런 행동은 공정거래법상의 ‘시장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범법 행동이었다.



그러면 출판사는 어떤가. 출판사야 오프라인서점이든 온라인서점이든 책만 팔면 그만인데 왜 온라인서점에 책을 안 주냐고 의아해 할 것이다. 출판사의 계산은 이렇다. 온라인서점이 계속 잘 되면 대형서점이 할인 판매에 들어간다.



대형서점이 할인하면 전국의 모든 서점이 할인 경쟁에 들어간다. 이런 경쟁체제에서는 소형서점들이 급속히 문닫을 수밖에 없다. 소형서점 연쇄 도산은 도서 도매상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도매상에 어음이 물려 있는 출판사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러나 출판사들이 상상하는 비극적 시나리오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소형서점들의 쇠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서점이 생기기 전부터 소형서점들은 쇠퇴일로로 접어들었으며, 도서정가제를 한다고 소형서점들이 비빌 언덕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서점들은 소형서점 몰락으로 고객을 잃어가는 서적 도매상들에게 새로운 판매시장을 열어줬다.



어음관행과 결별한 인터넷서점의 득세는 우리 출판 유통시장의 체질 강화로 귀결될 것이며, 이것이 출판사에게도 득이 되는 길이다. 소형서점의 몰락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막을 수는 없는 일이며, 전국의 중대형 오프라인서점들과 인터넷서점이 그 빈 틈을 충분히 메워나갈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논리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할인 정책 포기를 서약하지 않는 모든 인터넷서점에 대한 도서공급 중단이라는 초 강수를 두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이 예외 조항으로 저작물의 정가제를 허용하고 있으나,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을 경우에만 허용할 뿐 합의가 없으면 어느 일방이 강요하지 못한다는 것이 현재의 경기 규칙이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이러한 경기 규칙을 정면으로 어겼다.



축구는 축구로 승패를 가려야 하는데, 주먹도 쓰고 공도 뺏고 하는 반칙선수에게 호각을 불어줄 심판이 없었던 것이다. 당신이 이런 경기를 직접 치른다고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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