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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식물성 부부

주철환
JTBC 콘텐트본부장
한 해에 대략 서너 번 옷을 사러 간다. 그런 날의 풍경은 부부라기보다 차라리 모자에 가깝다. ‘아들’의 계획과 아내의 계산은 번번이 충돌한다. 늘씬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층에 내 눈길은 머문다. 아내는 한사코 발길을 재촉한다. 아내의 의상철학은 확고하다. 보기 좋아도 어울리지 않으면 제 옷이 아니라는 거다.



 화사한 마네킹이 나를 붙든다. “한번 입어볼까?” 아내는 고개를 젓는다. 어이없다는 표정이 뿜어져 나온다. 떼 쓰듯 피팅룸으로 들어가 기어이 몸에 걸치고 나온다. “괜찮죠?” 이번엔 점원의 동의를 구한다. 구매욕과 구매력을 가진 자 사이에서 점원은 슬기롭게 대처한다. “아드님과 같이 입으셔도 무난하겠네요.” 하기야 아들과 옷을 바꿔 입기 시작해도 무리가 안 느껴질 때 나 홀로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훈훈하다. 아들이 군복무 중에는 그 녀석 옷장이 오롯이 내 차지였으니까.



 아내는 나이에 맞는 옷을 입으라고 권한다. 자칭 동안클럽회원인 나는 내 얼굴, 정확히는 내 욕구에 맞는 옷을 원한다. 아내의 훈육이 시작된다. “당신은 자신을 몰라. 앞에선 좋다고 말해도 뒤에선 다들 웃는다고.” “웃는 게 뭐 어때서? 내가 편하고 좋다는데 누가 뭐래? 명품 입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보다 훨씬 낫지.” 결국 아내는 지갑을 연다. “후회하지 마.” 아내의 간결한 마지막 당부다.



 “젊어 보이시네요.” 이튿날.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내게 인사고과를 받는 요원들의 인사치레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대담하시네요.” 이 발언은 분석이 필요하다. ‘주책이시네요’의 리메이크 버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뭐라고 안 그래?” 넥타이부대의 시기성 질책까지 두루 거친 후에야 새로 산 옷의 청문회가 마무리된다.



 맞는 옷 하나 찾아 입는 것도 수월치 않은데 하물며 맞는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얼마나 어렵겠나. “결혼 안 해?” 늙어가는 후배에게 건성으로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 또한 관성적이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친절이 나의 등록상표지만 이 요구에 대해선 나름 까다로운 원칙을 고수한다. 내가 좋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당사자에게도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몇 차례 겪고 나서다. 배우자를 염두에 두고 후보를 소개해 줄 때는 그 사람의 성장 과정, 취향, 교우관계, 결합했을 때 예상되는 빛과 그늘의 다양한 경우를 예측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세 가지 항으로 결혼 예비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복잡하지 않다. 동물성, 식물성, 광물성. 먼저 동물성은 본능에 충실하다. 식물성은 생각이 많다. 광물성은 물질에 관심이 크다. 사람마다 비율이 다른데 만약 5:2:3이면 동물성, 3:2:5면 광물성으로 분류된다. 내가 이상적으로 보는 건 식물성, 대략 3:5:2의 성분이다.



 노래방에 데려가 보면 대충 안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도 관심 영역이지만 노래하는 순서와 마이크 잡는 횟수도 관찰대상이다. 배려, 양보심 다 드러난다. 무엇보다 자기에게 맞는 노래를 고르는 지혜가 중요하다. 모든 장르의 노래를 다 잘 부르는 건 무리다. 자기의 음색과 음역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 청중이 행복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그곳의 분위기에 맞는 선곡이 그의 센스를 가늠케 한다. 관객의 반응과는 무관, 무심하게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적어도 식물성 인간은 아니다. 가창력 점수는 노래방 기계에 뜨지만 기억에 새겨지는 건 인간성의 등급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가 영웅이라면 자기에게 딱 맞는 역을 찾은 배우는 행운아다. 적역을 맡으면 드라마 전체가 꿈틀댄다. 덩달아 그의 인생도 살아 움직인다. 결국 맞는다는 건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울이 필요하고 관객이 필요하고 전문가가 필요하다. 부모와 스승, 배우자는 모름지기 적성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착하게 결론을 맺자. 진짜로 매력적인 사람은 맞춰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 덕분에 노래방에선 화음이 살아나고 가정엔 화기가 돌고 세상의 온도는 체온에 가까워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가 더러 있다. “맞다! 그 사람 말이 맞았다.” 이 탄식은 감탄이 아니라 감동이다. 잘사는 부부, 잘 맞는 부부. 그래서 오늘도 맞추며 산다.



주철환 JTBC 콘텐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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