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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례식 참석했다 연행된 유력 대선주자

손학규 상임고문이 수배 중이던 1976년 봄날,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큰딸 원정양에게 우유를 먹여주고 있다. 그는 동네 꼬마를 통해 쪽지를 보내 며칠 뒤 딸과 부인을 몰래 만났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은 1965년 서울대(정치학과)에 입학한 뒤 30대 중반까지 운동권 인생을 살았다. 강원도 함백탄광에서 광부로, 구로공단에서 공원으로, 강원도 원주 과수원에서 막일꾼으로, 서울 합정동 철공소에서 공원으로 일했다. 소설가 황석영씨, 박형규 목사 등은 당시 그와 노동·빈민 운동을 함께했던 이들이다. 손 고문이 운동을 하던 시절, 그의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다. 손 고문이 몰래 병문안을 가면 꼬깃꼬깃한 지폐를 쥐여주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임종(77년)을 지키지 못했던 그는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당국에 연행되기도 했다.



민주화 역사와 함께 한 손학규
수배 중 모친 장례식서 연행 … 교수·도지사·당대표까지

 79년 10월 24일엔 ‘부마항쟁’에 가세하기 위해 마산을 찾았다가 김해보안대에 수감됐다. 48시간 동안 고문을 당하던 그는 이틀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풀려났다. 유신체제가 끝난 뒤 잠깐 열린 ‘서울의 봄’ 때 그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장학금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을 떠났고, 88년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아 돌아왔다. ‘재야인사 손학규’는 이후 ‘손학규 교수’로 변신해 인하대·서강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93년엔 김영삼 대통령의 영입 제안에 응해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또 한번의 변신이었다. 김영삼 정부에선 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2002년엔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2006년 도지사를 끝내고 나선 102일간의 ‘민심대장정’을 마쳤다. 당시 1만2475㎞를 이동하면서 93개 직업을 체험하고 1500여 명의 주민과 간담회를 해 ‘전 국민을 다 만나야 장정이 끝날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선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함께 ‘빅3’로 불렸다. 하지만 경선 룰 문제로 논란을 벌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해 야당 지도자로 변신했다.



 특히 민주당에선 ‘사지’로 꼽히던 2011년 분당을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했고, 현재의 민주통합당 창당을 성사시키면서 대선 주자로서의 발판을 다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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