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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사투리와 탯말이 그립다

이원규
시인
지리산 입산 15년 만에 일곱 번 이사를 했다. 지리산 텃새였지만 사실은 철새였다. 전남과 전북, 그리고 경남의 산골짜기와 섬진강변 곳곳에 살며 전국의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철새처럼 잠시 머무르는 곳이 바로 집이었으니, 번듯한 집 한 채 없지만 오히려 더 다양한 풍수지리의 빈집에 살 수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양떼들 대신 모터사이클을 몰고 다니는 빈손의 유목민이자 신 노마드(nomad)였다. 잃은 게 있다면 반드시 얻은 것도 있는 법. 지리산의 다양한 지수화풍(地水花風)과 삶의 방식, 사람들의 표정과 말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한때는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에 관심이 많았다.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처럼 뭔가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얼굴만 보면 관상이 되지만 표정을 보면 내면이 보인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은 슬피 울어도 천년고찰이요, 어떤 사람은 호탕하게 웃어도 간이화장실이다. 이는 잘살고 못살고,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그 사람의 향기와 빛깔이 저절로 드러나는 천기누설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얼굴과 표정만 보려다가는 선입견과 오독(誤讀)을 넘어 인권침해까지 저지를 수 있다. 그리하여 명색이 시인이니 여기저기 살면서 그 동네 사람들이 쓰는 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말은 곧 ‘마음의 얼굴이자 표정’이 아닌가.



 경상도든 전라도든 원주민들의 어투와 어감에 묻어나는 투박하지만 정겨움 가득한 마음과 표정들을 듣고 보고 읽노라면 하루 해가 짧았다. 전북 남원에서 케이블카며 댐 계획 등 위기의 지리산을 위한 회의를 하고, 전남 구례의 포장마차 어부의 집이나 동아식당에서 술 한잔 나누고,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녹차를 마시다 보면 문득 그들과 나누는 말들 속에 참으로 다양한 삶의 무늬들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른다.



 말에서 마음의 표정을 읽는 것을 넘어 ‘말은 곧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말이 몸을 얻게 되기 시작하니 ‘새들도 사투리로 운다’는 얘기가 실감나게 다가왔다. 사투리에서 묻어나는 이 살가우면서도 투박한 정서들은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다. 내 몸이 바뀌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와는 조금 다르게 귀농·귀촌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소통은 잘되는 듯하지만 뭔가 진정성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논리적이며 이성적인데 내 몸은 자꾸 뒤로 빠지게 되고, 말과 몸이 분리되고 있다는 것을 자주 실감하게 된다.



 이에 비해 난생처음 만난 전남 벌교의 국밥집 할머니가 던진 “아야, 밥은 묵고 댕기냐?”는 말은 얼마나 가슴 울컥하게 만들었던가. 마치 15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환생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힘들게 끄는 리어카를 뒤에서 조금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이잉, 겁나게 고맙소잉” 남발하던 구례군 용두리 뒷집할머니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 할머니가 하루 종일 쓰는 말이라고는 모두 ‘겁나게’와 ‘잉’ 사이에 들어 있을 뿐인데, 내게는 모두 시처럼 들리니 그저 베껴 쓰기만 했다.



 그동안 말과 몸이, 시와 글과 몸이 따로 놀았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강연에서 사투리는 사실 그 지역의 표준어라고 짐짓 우쭐하며 얘기했더니, 뒤풀이에서 진주의 박노정 시인이 내게 일침을 놓았다. 표준어나 사투리가 아니라 어머니 몸속에서부터 들었던 ‘탯말’이라고 수정해 주었다. 그동안 내심 부끄러웠던 내 고향 문경의 탯말, 무슨 부족국가의 말처럼 문경-상주-김천의 ‘여’자로 끝나는 “뭐 해여? 어디 가여?”라는 말이 어머니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청춘들의 음흉한 고백 “이리 둔누봐여(드러누워봐). 오빠를 그키(그렇게) 못믿어여?”라는 다소 낯부끄러운 말도 내게는 이미 시효가 지났지만 시로서는 가능해진 것이다. 어머니와 고향이 가르쳐준 영혼의 탯말은 말을 넘어 이미 몸이었다.



 이원규 시인

*필자는 순천대 문창과 강사로 시집 『빨치산 편지』 등을 냈으며,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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