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영아의 여론 女論] 조선의 ‘진짜’ 의사였던 여성, 유영준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유영준(劉英俊·1892~?)은 고향 평양에서 영리하고 변재(辯才)가 있으며 한문에 능한 여학생으로 유명했다. 차상찬(車相瓚)은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녀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으나 이후 그녀가 베이징여학교와 도쿄여의전(女醫專)으로 오랜 해외 유학생활을 하는 바람에 그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도쿄여의전을 졸업하고 1925년 일본 신문에까지 실리는 화제의 인물이 되어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야 차상찬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화려한 이력의 여성이니만큼 소위 ‘모던 걸’류의 ‘하이칼라’ 여성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소박한 의복이라든지 침정(沈靜)한 태도” 때문에 오히려 ‘구식 부인’ 같이 보였다고 한다. 그는 그녀의 원만하고 사교적인 성격과 친절하고 성숙한 태도가 여성운동가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차상찬, ‘명사제씨 만나기 전 생각과 만난 후의 인상’, 별건곤, 1928.2).



 그녀는 귀국 후 산부인과 의사로서, 이화학당의 교사로서, 사회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의 사회활동가로서, 그리고 근우회의 초대 위원장을 지낸 여성운동가로서 맹활약을 펼쳤다. 됴쿄여의전을 졸업하기 전에도 방학 때면 귀국하여 여성 계몽을 위한 연설과 강연에 나섰다. 그뿐 아니라 베이징여학교에 다니던 18세 때에는 안창호와 함께 민족운동에 참여했고 1919년에는 3·1운동에도 참가했다. 결혼 후 활동이 뜸해지기는 했으나 1930년대에는 후학 양성을 위해 경성여의전 설립에 힘썼다.



 또한 여성의 성적 해방에도 앞장서서 1927년에는 ‘여성의 정조 문제’를 두고 중외일보·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남성 지식인들과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는 현대사회에서는 “정조에 대한 근본적 관념의 표준이 달라”져야 한다며 “남성 본위의 성도덕으로부터 인간을 본위로 한 공평하고 순리적인 성도덕으로 진보”할 것을 주장했다가 남성 지식인들부터 수차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 남성 논객들의 위선적이고 ‘공상적’인 정조론에 대해 “성 해방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여유롭게 공박하며 재반론을 펼쳤다.



 이처럼 유영준은 조선의 독립과 조선인의 위생 및 교육, 그리고 여권의 향상을 위해 큰 기여를 한 여성·의사·사회지도자였다. 최근 포괄수가제, 피임약 등의 사안에서 보이는 의사들의 속물적 태도로 인해 의사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그녀와 같은 ‘진짜’ 의사가 무척 그립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