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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다시 새겨보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어디서나 인간은 사슬에 묶여 있다.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로 시작되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출간된 지 250년, 그리고 그의 탄생 300주년을 올해 맞고 있다. 근대사의 문을 열어준 과학의 천재가 뉴턴이라면 인문학의 천재는 루소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여러 분야에 걸친 공헌 가운데 정치사상과 사회이론에 관한 학술적 차원의 재조명은 한국정치학회와 한국정치사상학회에서 기획하는 기념학술회의에 맡기기로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루소 탄생 300주년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은 그가 제기했던 기본 과제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으며, 특히 오늘의 한국 현실과 연관시켜 볼 때 심각한 여러 논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혈연관계가 핵심이었던 전통사회가 근대사회로 전환되고 있던 18세기 유럽에서는 기존의 봉건왕정을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이 필요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비교적 손쉬운 대안인 군사국가나 종교국가를 제쳐 놓고 전 국민의 뜻과 일치하는 절대권력으로 운영되는 정치공동체를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제시된 근대국민국가의 모델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유럽 곳곳에서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근대정치 태동의 원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루소가 고안한 간결하고 멋진 정치공동체의 모델이 전제한 사회와 국가의 관계는 현실세계의 실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드러남으로써 많은 비판과 논란이 꼬리를 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루소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착한 존재지만 이기심과 약육강식의 관행에 휩싸인 사회환경에 의해 불안정, 불평등, 부도덕의 상태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병든 사회로부터 어떻게 인간을 구출하고 그들의 자유를 확실하게 보장해줄 것인가. 이에 대한 결정적인 해결책은 제도의 보완이나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원칙에 입각한 정치공동체, 즉 절대국가를 창조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길은 바로 모두의 뜻이 합쳐져 예외 없이 복종할 수 있는 절대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일반의지로 그 정통성에 따라 모두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정치공동체를 만든다는 논리며 처방이다. 홉스(Hobbes) 등이 주창한 절대권력국가의 필요와 대중사회가 요구하는 시민참여의 동력을 하나의 공식으로 접목한 루소의 작품이다.



 루소가 처방한 절대국가는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도덕국가이며 그러기에 그 뜻을 아는 현인정치를 예상케 한다. 국민이 일반의지에 참여하며 절대주권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차원에서의 인간 개조가 우선해야 된다고 하겠다. 칸트가 루소의 ‘계약’을 높이 평가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양심과의 약속 또는 계약을 지키는 것이 도덕사회의 출발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루소의 정치사상은 다분히 유토피아적 성격이 짙으며 이는 경험적이거나 실증적인 입장보다는 선험적이거나 규범적인 차원에서 이상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소의 18세기와 우리의 21세기 사이에는 시대적 격차 못지않게 인간과 자연을 보는 문화적 관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전파된 서양의 계몽주의 시대에 비해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빈곤, 무지(無知), 폭력, 비굴로부터의 자유를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함께 잘 살아가는 민주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가를 우리는 이미 실감한 지 오래다. 일제 침략에 의한 제국주의 시대의 시련을 넘어서면서 우리가 선택한 민주공동체 국가와 사회체제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갈지는 풀리지 않는 당면과제다. 우리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의 정통성과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꿈과 권리를 어떻게 조화, 융합, 일치시켜 나가느냐 하는 과제는 루소라는 천재가 250년 전에 씨름했던 작업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루소의 정치사상은 가능성만큼이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해결책을 국가에 맡긴다는 생각은 루소의 창의적인 발상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 국가나 권위주의 정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 쉬운 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루소는 시종 정치와 국가의 공공성(公共性), 특히 각자의 사익(私益)을 넘어선 공익(公益)을 강조한 이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정치가 분열된 사회를 통합으로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면 이는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공인(公人)으로서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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