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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의 쉬운 풍경 14] 하늘과 산을 품은 논

전라북도 순창, 2008 ⓒ강운구


모심기가 끝나면 농부들에겐 잠깐 숨돌릴 겨를이 생긴다.



 농사는 비가 안 와도 너무 와도 탈이 난다. 저수지, 댐 같은 걸로 대비한다 하여도 하늘을 당할 수는 없다. 마침내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멋진 수사이기도 하지만 사실이다. 그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농사뿐이었던 시기에는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하늘의 뜻일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뜻은 그저 평범한 게 제일 좋은데, 세상을 닮아서 그런지 보통이긴 드물다.



 겨우 물 대고 모 심은 논에 하늘이 담겼다. 물이 모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작물을 심으려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곁의 빈 논이 물 댄 논을 돋보이게 한다. 수면의 밝은 하늘에 노출을 맞췄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두운 흙은 더 검게 나왔다. 거기다 인화(印畵·print, 이 영어는 판화나 인쇄도 말한다. 인화는 그보다 더 민감한 수공이다)할 때 약간 더 검게 나오도록 했다. 그래서 그 분명한 대조가 조형을 쉽게 드러낸다.



 사진이 발명됐을 초기에는 찍은 사진이 한 장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감광재를 바른 금속판에 정착된 영상은 희미했으며, 거울에 비친 상처럼 좌우가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그런 사진을 두고 ‘기억을 가진 거울’이라고 했다. 그땐 찍히려면 머리 뒤에 받침대를 대고 땡볕에서 10분쯤이나 꼼작 않고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다 필름이 등장하면서 원하는 장수만큼, 좌우가 바로 나오는 선명한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껑충 건너뛰자면, 사진이 발명된 뒤로 170년쯤 흘러갔을 때 디지털 사진술이 나왔다. 이것은 다만 기술의 진보라고만 할 수 없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다. 누구나(장님도) 값싼 카메라(또는 전화기)로도, 셔터만 누르면 선명한 영상이 나온다. 마침내 디지털이 사진술의 민주화를 완성했다.



 어느 분야에서나 기술의 진보가 꼭 내용을 심화시키진 않는다. 사진에서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래서 최근엔 사진 내용이 쇠퇴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러므로 디지털 이후로는 카메라가 아니라 그 뒤의 사람이 더 중요해졌다. 단순히 비치는 것을 복제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세상의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표현 방법과 내용이 달라진다. 기록하는 수단, 표현하는 수단이 다각화되면서 사진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더 넓어졌다. 디지털 사진술은 누구의 말이나 다 잘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 심은 데 콩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논의 모가 자라면서 산과 하늘의 그림자를, 한때의 기억을 지워 갈 것이다.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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