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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탈북자라는 이름 지켜주자

박상봉
명지대 교수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
“공산주의는 사회적 약자를 이용해 정권을 획득하려는 사기극이다.” 공안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내린 정의다. 정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 깊은 고뇌와 사명감이 녹아 있다. 이 변호사에게 북한이나 종북주의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탈북자를 변절자로 명명하는 사람들이 탈북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이렇듯 국가의 현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사안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갈리기도 한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기도 하고 나라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다. 새터민이냐, 탈북자냐 하는 호칭 문제도 마찬가지다.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북한 주민을 새터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정동영 통일부장관 시절이다. 이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남한 내 정착을 도와주려는 취지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감이 간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새터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새터민이라는 이름에 정작 탈북자들은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탈북자 대표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참석해 거세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왜 그럴까. 새터민이라는 이름에는 북한 체제의 잔혹함이 담겨 있지 않다. 탈북자들은 김정은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북한은 철저한 성분 사회다. 출신 성분이 불순한 자들은 출세는커녕 세 끼 밥도 챙기기 어렵다. 김씨 일가는 3대를 세습해가며 초호화 삶을 즐긴다. 『대동강 로열 패밀리 서울 잠행 14년 』이란 책에서 이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알렸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은 북한 첩자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탈북자는 이런 북한 체제에 대한 고발자다.



 또한 새터민이란 호칭에는 인권의 소중함이 담겨 있지 않다. 현재 북한에는 20만여 명의 정치범이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꽃제비로 살아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드러난 탈북자들의 인권 침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 내 탈북자를 가리켜 ‘두발 달린 짐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깡마른 얼굴에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다. 시도 때도 없이 공안이 들이닥친다. 단 하루도 편하지 않다. 특히 탈북 여성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탈북자들은 이런 인권침해에 대한 고발자다.



 마지막으로 새터민이란 용어에는 탈북자들이 통일의 열쇠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독일 통일의 주역은 바로 동독 탈출자들이었다. 동서독 평화공존이라는 허상을 여지없이 깨부수고 자유를 택했다. 서독 주민들은 이들을 받아들였고 통일을 거머쥐었다.



 북한이 탈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개처형을 하고 3족을 멸한다고 해도 탈북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자유와 삶의 풍요를 찾아 떠나는 유일한 루트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가 폭정을 중단하고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탈출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탈북자의 종착역이 통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즈음 다양한 채널을 통해 탈북자들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북한 탈출, 남한 정착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모두가 한 편의 드라마다. 하늘 같던 아버지가 중국 공안에 걷어차이고 끌려가는 모습, 두만강가에서 홀로 낳은 아이를 빼앗기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어머니,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목숨을 구걸하던 청년, 밤마다 성 노리개가 되어 농락당하던 수치, 모두가 현실이다. 창피하고, 초라하다. 서글프고, 분하고, 억울해 하염없이 눈물만 흐른다.



 이런 상처들을 새터민이란 호칭은 담아내지 못한다. 탈북자, 이제 그 이름만이라도 지켜주자. 어설픈 동정심에 부르는 새터민이란 말로는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도 지켜주지 못한다.



박상봉 명지대 교수·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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