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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믿는 것과 믿고 싶은 것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믿음이 실리지 않는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유럽 위기가 그 많은 대책들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는 주어진 여건하에서 그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이 있다는 것과 그 정책이 추진되었을 때 그것이 의도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합쳐질 때 생기는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순환적 혹은 일과성 요인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제도적 문제의 결과라는 것을 시장은 알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나 대폭적 구조조정, 또는 유럽의 재정통합과 같은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시장의 회의는 지속되고 위기도 지속될 것이다.



 문제의 해결이 어렵고, 그것이 큰 고통의 수반을 요구할 때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에 기대보려 한다. 이때 누군가가 고통 없이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거나 혹은 ‘이번은 다르다’며 새로운 이론을 내세워 현상 유지의 구실을 주면 대중은 쉽게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 대개 그 결과는 희망의 실현이 아니라 파국의 도래였다. 어떤 나라건, 어떤 시대건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을 주는 정책을 택하고, ‘믿고 싶은’ 유혹을 피하는 것이다. 이는 정책의 대상이 되는 대중이나 정책을 약속하고 채택하는 정책 당국 모두에 있어 그렇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해 아직도 세계가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결국 미국·유럽의 대중과 정책 당국이 이런 믿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값 급등, 영(零)에 가까운 가계저축률, 이에 기반한 과소비 지속으로 전례 없이 오랜 기간 동안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것을 정보기술(IT) 혁명과 세계화에 따른 신경제(new economy)의 도래 때문이라 믿고 싶어 했다. 알지도 못하는 신종 금융상품이 쏟아지고 저금리로 신용과 부채가 팽창해도 이를 금융시장의 효율성 덕분이라 믿고 싶어 했다. 만약 거품이 터지면 통화정책으로 이를 쉽게 연착륙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 했다. 결국 거품과 시장은 붕괴되었고 그러한 희망은 거품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는 반값등록금, 보편적 복지, 무상보육을 확대해도 국가의 재정건전성은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가계부채가 가처분소득의 약 150%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도 이것이 충분히 관리 가능하고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여기저기 끝없이 파헤치고 개발·정비하는 비용을 예산이 아니라 공기업의 빚으로 떠넘기며 앞으로 이들 공기업이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대책은 실종되고 바람만 있을 뿐이다. 손수건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내게 와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 모두 믿고 싶어 하는 것인가?



 본격적인 대선 계절이 시작되면서 각 진영은 국민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을 경쟁적으로 제조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747 등은 과거의 작품이다. 새로운 작품들은 어떤 것이 나올 것인가? 이번 대선이 ‘믿음’을 주는 경쟁이 아니고 ‘믿고 싶은 것’의 경쟁이 되면 우리는 다시 5년을 뒷걸음질과 실망으로 보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 문제는 장기적 대책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가계부채, 부동산, 자영업자, 비정규직, 소득분배, 중소기업 경쟁력, 공정경쟁기반 등은 오랜 기간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해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과제들이다. 그것도 온갖 저항을 무릅쓰고. 반면 우리의 정권은 5년 단임에 그치고 있다.



 향후 수년간 세계경제 전망은 어둡고, 다음 정권은 이번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계금융위기를 이유로 오히려 더 키워온 과제들을 대거 물려받게 될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 금융시장의 규율 해이, 비정상적 저금리의 장기화, 실질적 국가 부채의 급증, 대·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 확대, 부패의 확산 등은 언젠가는 우리 경제의 비용으로 현실화될 것이다. 따라서 다음 정권을 맡을 사람은 새로운 핑크빛 목표를 제시하기보다 내실을 다지고, 부실을 처리하며 위기를 관리하고 경제의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들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으로 유혹하는 정당과 대선후보를 가려내는 것이 이번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어떻게 구별하느냐고?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움을 헤쳐가자고 하면 전자일 확률이 높다. 모호하며 근사한 구호로 임기 중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해결하겠다면 후자일 확률이 높다.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어 갖고 국민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 후자일 확률은 더 높아진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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