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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만든 선악 이분법 아이의 눈으로 꼬집었다

소설 『위키드』의 작가 그레고리 머과이어가 주인공 엘파바의 캐릭터 인형과 포즈를 취했다. 그는 “뮤지컬 ‘위키드’는 소설의 복잡한 이야기를 다양한 연령대가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다. 동성 부부로 살고 있는 그는 아이 셋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사진 민음사]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세계는 동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동화는 선악의 분명한 선긋기를 가르치지만, 현실에서 선악이란 분별이 모호한 가치다. 때로는 악이 선으로 둔갑하고, 선이 악으로 결판나기도 한다. 이 모호한 선악의 세계가 뮤지컬 ‘위키드(Wicked)’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후 9년째 흥행 1위를 기록 중이다. 전세계적으로 3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내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데, 매회 유료관객 점유율이 90%를 넘어설 만큼 인기다.


거침 없는 흥행의 비결은 무엇일까. 원작 소설 『위키드』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뮤지컬은 매끈한 선율과 화려한 무대로 원작을 곱게 화장시켰지만, 서사의 큰 줄기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간다.

 소설 『위키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뒤틀면서 시작된다. 『오즈의 마법사』는 동화 특유의 분명한 선악 구분을 따라 등장인물을 구성한다. 예컨대 주인공 도로시를 돕는 금발의 마녀 글린다는 착한 인물로, 도로시를 괴롭히는 녹색 마녀 엘파바는 나쁜 인물로 묘사된다.

 소설의 저자 그레고리 머과이어(58·Gregory Maguire)는 이 따분한 이분법을 무너뜨렸다. 피부색 때문에 어려서부터 따돌림을 당한 녹색 마녀 엘파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동화가 설파하는 선악의 세계는 실은 거짓”이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통쾌하다. 남과 다른 겉모습 때문에 악으로 몰리는 엘파바의 선한 이면과 착한 마녀 글린다의 감춰진 허영심을 까발림으로써, 선악의 세계라는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탄다.

 특히 엘파바는 악한 마녀로 몰릴지언정 사회적 소수파(동물들)와 연대하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라는 권력에 당당하게 맞선다. 이 지점에서 어른이 된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권력자가 질서를 부여한 현실 세계의 선악 구분은 타당한 것인가.

 뮤지컬의 폭발적인 인기는 원작 소설의 탄탄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의 동화를 뒤틀어 어른들의 동화를 탄생시킨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기발한 상상력 덕분이다. 몇 번의 고사 끝에 그와의 e-메일 인터뷰가 성사됐다. 최선을 다해 천진한 작가와의 유쾌한 문답이었다.

뮤지컬 ‘위키드’에 나오는 녹색 마녀 엘파바(젬마 릭스·왼쪽)와 금발 미녀 글린다(수지 매더스). [사진 앤드루 리치]
 - 고전 동화를 비튼 까닭은.

 “어려서부터 『오즈의 마법사』에 푹 빠져 있었다. 작가된 뒤로 문득 오즈라는 세계의 비현실성을 깨달았다. 소설 『위키드』는 실은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도덕적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휘두르는 힘,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치적 힘 말이다.”

 -『위키드』를 쓰게 된 배경은.

 “1990년대 초 악의 기원에 대해 철학적·심리학적·사회적 검토를 하던 중에 초록색 다리로 서서 삶을 개척하는 엘파바가 떠올랐다. 그래서 고귀한 지적 학습은 포기하고, 내 마음 속을 맴도는 그녀의 삶을 글로 옮겼다.”

 -뮤지컬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뮤지컬 ‘위키드’는 거인이다. 내 소설이 가려질 정도로 거대하지만, 그 거인 덕분에 수백 만의 독자가 생겨났다. 나도 그 뮤지컬을 사랑한다. 이야기의 톤이 비극적인 소설보다 가벼워지고 플롯이 단순해졌지만, 소설의 중요한 영감이 다 살아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

 -특별한 집필 스타일이 있나.

 “보통 1년에 4~5개월 정도 글을 쓴다. 매일 90~120분씩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고전소설을 읽는다. 최근에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을 전부 읽었다.”

 -동화를 재해석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옛날이야기를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뭔가를 봐야만 한다.”

 -개인적인 체험과 관련이 있나.

 “어려서 친어머니를 잃고 고아원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온 아이는 혼란스럽다. 내 소설은 대부분 이런 혼돈의 정서를 깔고 있다. 본질적인 재난 속에서 시작되지 않는 이야기는 울림이 없다.”

 머과이어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해 소설을 쓰고 싶지만, 어린이 책을 좀 더 잘 쓰고 싶다”고 했다. 평범한 유년기를 상실했기 때문일까. 그는 아이의 눈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위키드』는 아이의 눈으로 어른의 세계를 꼬집는 이야기다. 우리 안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이의 눈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상상력의 나라에서, 우리는(we) 얼마든지 아이(kid)가 된다. ‘위키드(Wicked)’는 ‘위 키드(we kid)’다.


◆소설 『위키드』=199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미국에서 300만 부 넘게 팔렸다. 한국에서는 2008년 민음사에서 『위키드 1권』(엘파바와 글린다)이 출간돼 최근 4권(겁쟁이 사자 이야기)까지 나왔다. 8월께 모두 6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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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