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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엉뚱한 데 손가락질 말자

고정애
정치국제 부문 차장
여든을 앞둔 노부부가 있다. 평생 근검절약을 했다. 감자와 오이를 살 때도 일부러 흠이 있는 걸 고를 정도였다. 덕분에 남들이 10만원을 쓸 때 2만원이면 족했다고 한다. 고희(古稀)를 앞둔 어느 날 노부부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축하연 대신 그 돈으로 남을 돕자고 말이다. 남편이 졸업한 육군사관학교에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매년 500만원씩 10년간 그랬다.

 노부부는 여든이 다가오자 고민에 빠졌다. 매달 150만원씩 꼬박꼬박 나오는 강남의 상가를 두고서다. “죽을 때 부동산을 끌어안고 갈 수 없는 것 아니냐.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곤 3년간 용처를 고심했다. 결론은 다시 육사였다. 노부부는 지난해 상가의 명의를 육사로 넘기면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라”고 신신당부했다.

 육사 14기 출신의 편동수(79) 예비역 육군 소장과 부인 박수애(77)씨의 얘기다. 부인은 “육사가 아니었으면 남편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했을 것”이라며 “은혜를 갚기 위해 기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곤 이런 말도 했다. “육사를 졸업하면 소대장으로 가요. 군대를 간 아이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이가 소대장입니다. 번듯한 소대장을 길러내는 게 곧 나라 발전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6·25전쟁이 발발하자 453명이 전쟁터로 달려나간 학교가 있다. 재학생 10명 중 4명꼴이었다. 이들 중 32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 학교는 고(故) 강재구 소령의 모교이기도 했다. 1965년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에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들을 구하고 숨진 군인 말이다. 이 학교는 2010년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교내에 참전기념비를 세웠다. 강 소령이 나온 육사에 발전기금도 냈다. 바로 서울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생도 사열 논란이 일었던 8일 육사의 화랑연병장엔 노부부도 서울고 사람들도 있었다. 육사가 발전기금을 모으기 시작한 지 19년 만에 200억원을 돌파한 걸 기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도 이들도 초청을 받았다. 마침 다른 시상식도 있어 400여 명이 함께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그러나 마치 전 전 대통령을 위한 행사인 양 알려졌고 비난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이 맨 앞줄에 앉았고 생도들의 퍼레이드 중 거수경례를 했다는 이유에서 사열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정치권에선 당장 “내란과 반란의 수괴 전두환이 육사에서 생도 사열을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육사는 난타당했고 생도들은 국가관과 역사 의식을 의심받았다. 노부부처럼, 서울고처럼 다수의 선행한 이들은 잊혀졌다.

 분명히 전 전 대통령이 단상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불편하고 불쾌하다. 매캐한 5공의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그는 단죄 받은 이후에도 늘 앞자리였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의전을 받았다. 대통령 취임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DJ는 대통령 재임 중 그를 청와대로 10여 차례 초청했다. 그가 2010년 DJ를 병문안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일 때 전직(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북핵 위기 때 그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그의 육사행을 비판하는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내란과 반란의 수괴’와 만난 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또한 국가기강 문란 행위인가. 전 전 대통령이 공공장소에서 예우 받는 게 마치 이번이 처음인 양 펄쩍 뛰지 말자는 거다. 그는 단죄 받은,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란 양가(兩價)적 존재다.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무조건 잘못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붙여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가 잘못 행동하면 행동하는 대로 그를 탓하면 될 일이다. 엉뚱한 곳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상처 줄 일 아니란 거다. 그와 접촉만으로도 그의 쿠데타 실력이 후대로 전수될 것이라고 호들갑 떨지도 말자. 후대에 대한 모욕이다.

 그날 행사에 참석한 서울고 사람은 이후 모교 출신 생도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훌륭한 조국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그걸로 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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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