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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종북주의 논란과 희망의 크기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부정 사태로 시작된 종북(從北)주의 논란으로 인한 이념논쟁이 온 사회를 휩쓸고 있다. 사회주의 붕괴와 탈냉전 20년을 경과한 시점에, 그리고 남북 국력격차가 건국 이래 가장 큰 상황에서 돌출한 이념갈등은, 상식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민주주의·경제·사회제도·체제가치의 ‘글로벌 한국’에서 대두된 이념논란은 너무도 퇴영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폐적인 이념갈등이 계속되고 있는가? 일부 수구진보의 시대착오적 북한추종 노선이 존재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수구진보가 한국사회 전체의 이념 지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더욱이 부정선거를 통해서라도 의회 교두보를 확보하려던 전술은 민주주의 파괴와 허위진보로 인해 거꾸로 자신들을 퇴출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런 허위를 향후에 국민 누가 다시 지지하겠는가?

 물론, 수구진보 세력이 주류보수와는 다른 이념을 가졌더라도 정상적인 국민 지지 절차를 통해 선출되었다면 이들은 다른 국회의원에 의해 국회에서 퇴출될 수 없다. 그들의 국가관이 정말 문제 된다면 그것은 ‘정치적 논란’의 문제 이전에 ‘사법적 사안’으로서 국가기관의 조사와 처리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의회로부터 ‘정치적 퇴출’을 당해야 할 정도의 중대사안이라면 마땅히 심각한 헌법·법률 저촉 사항이 존재하지 않겠는가? 선거부정을 포함한 절차적 합법성과 민주적 정당성 여부가 특정 이념 성향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점이야말로 민주주의체제가 전제왕정은 물론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포함한 전체주의에 승리해온 핵심 요체다.

 보수정당의 현직 대통령과 유력 대선후보가 이념적 국가관을 문제 삼는다면 그런 국가관은 더욱 위험하다. 반공 대(對) 친공, 반북 대 종북의 국가관으로 나눈 뒤 전자만을 유일 기준으로 삼으려는 양자택일의 논리 폭력이기 때문이다. 즉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온건진보 세력도 극단적 반공과 반북이 아니라는 이유로 친공과 종북으로 매도될 수 있다. 양자택일 사고에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는 항상 가장 극단적인 오른쪽과 왼쪽만을 향해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온건진보와 수구진보의 차이’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만큼 크다. ‘온건보수와 수구보수의 차이’ 역시 마찬가지다.

 양자택일의 논리는 항상 대안적 사유와 실천의 공간을 막음으로써 한 사회의 미래가능성을 차단하는 사유와 담론의 폭력으로 나타난다. 흑백논리에 빠져드는 순간 여러 대안들이 갖고 있는 섬세한 차이, 넓은 희망, 풍성한 가능성은 실종된다. 그와 동시에 흑백논리의 쌍둥이인 진영주의와 천박성이 온 사회를 휩쓴다. 그리하여 천박성과 진영논리의 결합, 즉 ‘천박한 진영논리’만이 한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전체주의 등장 전후와 이념전쟁 시기를 포함해 현대인류는 ‘천박한 진영논리’의 혹독한 대가를 수차 지불한 바 있다.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을 경험한 한국 사회는 말할 필요도 없다. 미래를 향한 희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천박한 진영논리’는 이제 끝내야 한다.

 특별히 만약 보수정당이 대선전략 차원에서 온건민주 세력조차 이념문제를 걸어 종북주의로 공격하려 했다면 이는 자신들에게 더욱 위험하다. 복지국가·민주국가·평화국가·화해국가 노선을 종북주의로 낙인찍어 공격하려는 순간 그들의 국가관은 재벌국가·독재국가·군사국가·전쟁국가로 역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은 진정 후자의 국가를 원하는 것일까?

 끝으로 남북관계 대결이 초래할 보수정조를 활용해 대선에서 승리하려고 종북주의를 확대증폭시켰다면 보수정당과 언론의 전략은 거의 완전한 패착이 될 것이다. 김영삼 정부하의 김일성 조문논쟁[보수유리]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진보승리],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진보유리]와 한나라당의 4·13총선승리[보수승리], 2002년 제2차 북핵위기 대두[보수유리]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진보승리], 2010년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보수유리]와 민주당의 6·2지방선거 승리[진보승리]… 사례들처럼 남북관계 의제 활용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성공한 적이 없었다. 활용을 시도한 집권세력은 선거에서 반드시 패배했던 것이다.

 탈냉전과 민주화 이후 남한사회의 이념적 독자성과 자생력은 이제 확고하다. 동시에 모든 선거에서는 남북문제보다 민주개혁·경제위기·도덕성·실업·평등과 같은 내부 의제가 훨씬 중요해졌다. 대선을 앞두고 공허한 이념논쟁을 넘어 진보·보수 모두 공동체 성원들의 삶의 질 제고와 사회통합에 앞장서야 할 분명한 근거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의 희망의 보폭을 넓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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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