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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덫에 걸린 독일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가 한풀 꺾인 올 4월 일이다. 존 폴슨(57) 미국 헤지펀드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은 독일 분트(국채)의 하락에 베팅했다. 분트 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머니게임이었다. 순간 유럽 채권시장이 긴장했다. 폴슨은 2007년 미국 모기지 채권에 그런 식으로 베팅해 200억 달러(약 23조4000억원)를 벌어들인 주인공이다. 이런 그가 분트를 빌려 팔아치웠다(공매도)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했다.

 폴슨은 이유를 친절하게 밝혔다. 당시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주변부가 위기에 빠져 독일이 돈을 퍼부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며 “그 결과 독일 재정 상태가 나빠지면서 분트 값이 떨어질 수 있다”고 적었다.


 그의 예측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적중했다.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는 재정긴축도 요구하지 않고 스페인에 적어도 1000억 유로(약 147조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무조건 돈 퍼붓기의 선례가 마련된 셈이다.

 로버트 새뮤얼슨 워싱턴포스트(WP) 경제칼럼니스트는 “메르켈이 (입장을 바꿔) 통합채권(유로본드) 발행에 나서고 대대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고 11일(한국시간) 예측했다. 이런 조언을 따르려면 독일 국민의 부담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독일 경제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독일이 져야 할 부담은 얼마나 될까.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인 카멀은 ‘독일, 생각보다 위험하다(Germany Is Riskier Than You Think)’는 보고서에서 “독일인들이 앞으로 5년간 5790억 유로(약 851조1300억원)를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로존을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추산한 금액이다. 카멀은 “독일이 유럽 구제금융 펀드에 투입해야 할 금액과 민간 은행들이 그리스·스페인 등에 떼일 돈, 앞으로 5년 동안 수출 감소분을 모두 더한 금액이 그 정도”라며 “그 바람에 5년 뒤 독일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3%까지 늘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말 독일의 국가부채는 80% 정도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유로존 맹주인 독일이 처방한 긴축 때문에 침체에 빠진 그리스·스페인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찰스 마이어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9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지금 유럽엔 독일판 ‘마셜 플랜’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마셜 플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미국이 독일 등 서유럽 16개국에 제공한 재정 자립 원조 계획이다. 마이어 교수는 “그때 원조를 받았던 독일이 나서지 않는다면, 스페인과 그리스의 실업자들이 대거 유로존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등 피해가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독일 정부가 수천억 유로를 투입해 경기 부양에 나서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고 독일이 유로존 해체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카멀 보고서는 유로존 해체에 따른 독일의 직접 부담을 향후 5년간 1조3100억 유로로 추산했다. 이는 1990년 이후 독일이 20여 년간 직간접적으로 부담한 1조3000억 유로의 ‘통일 비용’과 맞먹는 금액이다. 독일 경제는 통일 비용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오랜 기간 활력을 잃었다. 그 바람에 독일은 한때 ‘병든 사자’로 불리기까지 했다.

카멀은 “유로존 붕괴에 따른 비용 때문에 독일 국가부채는 GDP의 131%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빠진 2009년 국가부채는 GDP의 160% 수준이었다. 헤지펀드 매니저 폴슨이 분트 값 하락에 베팅한 게 무모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독일이 유로존 해체를 선택해도 경기부양은 불가피하다. 유로존 붕괴에 따른 침체에서 경기를 되살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국 시중은행이 그리스·스페인 등에 돈을 떼여 흔들리면 막대한 공적자금도 투입해야 한다.

 그 대가는 인플레이션이다. 독일 국민이 1920년대와 2차대전 이후 시달려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 실제 벌어지면 독일인들은 보이지 않는 비용(인플레이션)까지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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