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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말 듣는 기술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교수 사회에 회자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교수 세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기가 무척 어려운데 그렇게 모인 세 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 교수 여럿과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구조를 띠고 있는 곳이 한국의 대학 사회다. 각자 연구실로 들어가 문을 닫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일견 한국보다 수평적인 미국의 대학은 실상 학장과 학과장이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쥐고 있는 구조다. 반면 한국에서 학과장은 대부분 순번제다.

 이런 ‘편의적 수평구조’에서 강의는 교수 개인의 절대 권한이라는 인식이 대학 사회를 지배해 왔다. 옆방 동료가 어떤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는지 들여다보지도 않을뿐더러 이를 공론화하는 것을 금기시해 왔다. 특히 지난 십여 년간 연구업적을 최고의 성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강의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연구업적은 저널의 등급, 논문 편수, 인용지수로 계량화할 수 있지만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강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학생의 강의 평가 비중이 교수를 긴장하게 할 만큼 높아지고, 교육과 직능을 연계하는 각종 교육인증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5년제 건축학교육은 개별 과목뿐만 아니라 학과 커리큘럼을 외부기관에서 검증한 지 올해로 5년째다. 처음에는 대학의 반발도 많고, 인증과정에서 결함도 드러났지만, 교육도 검증의 대상이라는 인식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학생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더라도 지식은 전달했다고 위안 삼던 시절은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갈수록 강의가 부담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수업 내용을 공개하고 머리를 맞대며 논의해야 한다. ‘강의만 없으면 대학 교수 할 만하다’는 썰렁한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몇 년째 나는 새내기들에게 건축의 입문 과정인 ‘기초설계’ 과목을 팀티칭하고 있는데, 마지막 과제가 1인이 잠자고, 먹고, 일하는 ‘나의 방’ 설계다. 작업 공간도 좁고 재료비도 많이 드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모형은 실물의 30분의 1 크기로 만들게 했다. 그런데 과제를 내주기 며칠 전 젊은 동료 교수가 파격적 제안을 해왔다. ‘나의 방’을 실물 크기(1:1)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행정적·기술적 난관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주저하다가 ‘한번 해보죠’ 하고 내뱉고 말았다. 좁은 설계실에 방을 만들자고 하니 학생들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2주가 지나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친구들도 열띤 토론에 참여하고, 센 주장을 펴던 친구들도 남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접착총을 든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벽을 꼭 붙잡으라고 지시한다. 벽이 서고, 문이 달리고, 주방기기, 변기, 책상, 침대가 놓인다. 몸은 지쳤는데 학생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학생들의 변화는 어디서 왔을까? 첫째, ‘상상’의 공간이 ‘체험’의 공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골판지를 잘라 벽을 세우면서 학생들은 힘과 구조 원리를 자연스럽게 깨닫고 접착총을 쏘면서 재료와 디테일을 이해했다. 근대적 도시와 건축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했던 발터 베냐민은 촉각을 수반하지 않는 경험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는 실제 공간에서 거주할 때만 가능한 경험이다. 둘째, 공동 작업에서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적 묘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주장, 설득, 양보, 협력의 결과다.

 무엇보다 팀 지도를 한 교수들이 수혜자였다. 학생 개개인에게 쏟아야 하는 노력을 줄이고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돌이켜 보면 말을 했던 시간보다 말을 들었던 시간이 길었다. 한 이슬람 학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말을 내뱉는 것은 지식을 소비하는 것이고, 말을 듣는 것은 지혜를 얻는 것이다.” 우리들이 학생들에게 배웠던 것이다.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교수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다. 교수도 오십이 넘으면 ‘가르치는 기술’보다 ‘듣는 기술’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게 하는 소리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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