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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여론 女論] 무언의 항일운동 여학생, 최윤숙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이영아 교수
1946년 7월 정동 이화고등여학교 졸업식장에 여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두 명의 부인이 졸업생들 옆에 앉아있었다. 최윤숙(崔允淑)과 김진현(金鎭賢). 교장은 이 두 여성에게 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이들 두 어머니에게 오늘 이 졸업장을 주게 된 것은 우리 학교의 자랑이며 해방 후 이렇게 떳떳하게 이들에게 졸업장을 주고받게 되니 과연 우리 학원의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은 1929년의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일어났던 1930년 1월 서울 여학생 시위를 주도했었다. 당시 19~20세의 이화여고보 학생이었던 최윤숙과 김진현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학교에서는 퇴학당하는 바람에 졸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이화고등여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이들의 공로를 치하했던 것이다. ('감격의 눈물에 어리어 17년 만에 받은 졸업장', 자유신문, 1946.7.25)

이후 가정주부로만 남은 탓인지 한국여성사에서 이들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30년대 당시 최윤숙에 대해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있다. 그때 시위 주동자로 공판정에 섰던 최윤숙 포함 6명의 여학생들은 형사와 기자들 사이에 큰 관심거리였다고 한다. '누구는 용모가 어떻고, 누구는 운동선수고, 누구는 말 잘하고…' 등등. 그러던 중 기자 홍종인(洪鍾仁)은 이들의 취조를 맡았던 S경찰서의 A형사로부터 최윤숙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형사의 말인즉슨 "누구라 누구라 하지만…그 중에도 무서운 여자가 한 명 있다. 그것은 최윤숙이다. 취조하는 때면 사람의 품을 다 알 수 있는데 그 중에 묻는 말을 덥석덥석 잘 대답하되 안 해도 좋을 말까지 하는 것은 문제도 안 되지만 전혀 말을 안 하는 것 같이 괴로운 것은 없다. 이러이러하지 않느냐고 사건의 전례를 들어 물어야 겨우 응, 이라든가 아니오, 라든가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만은 참 괴롭다. 손을 댈 도리가 없다. 그 최(崔)만은 참 곤란하였다…그 여자에게는 빈틈이 별로 없다"라는 것이었다.



1931년 그녀가 공산당 재건 사건에서 연락책 역할을 하다가 다시 S서 고등계에 잡혀와 있는 모습을 본 홍종인은 1년 전 그 형사의 말을 떠올렸다. 여전히 그녀는 "예", "아니오" 두 종류의 대답만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녀의 침착하고 담대한 태도가 홍종인에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홍종인, '법정에서 본 그들, 무언의 최윤숙', 동광, 1931.10).



이영아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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