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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세계 미술을 말하다] 독일 카셀 도쿠멘타 현장 ①

독일 카셀 중앙역에 설치된 양혜규의 작품. ‘진입: 탈-과거 시계의 공학적 안무’. 100개 가까운 검은 블라인드가 열차처럼 착착 소리를 내며 오르내린다. 양씨는 10여 년째 독일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19세기 중반 세워진 카셀 중앙역 옛 화물역사는 오랫동안 방치돼 있다가 올 카셀 도쿠멘타에서 처음 공개됐다. 제13회 도쿠멘타에는 55개국 작가 150명이 참여했다.


5년에 한 번, 세계 미술계의 중심은 독일 중북부의 작은 도시 카셀로 이동한다. 세계 최대 현대미술제 중 하나인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검게 도열한 블라인드 … 20세기 휩쓴 전체주의 고발하다



올해도 글렌 로리 뉴욕 현대미술관장, 오쿠이 엔위저 파리 트리엔날레 감독 등 미술계 저명 인사들이 여기 모였다. 현대 미술의 쟁점과 새로운 흐름을 소개하는 이 미술제를 놓치면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오랫동안 관람객에 머물렀다. 1977년 백남준(1932∼2006)과 이우환(76)이 처음으로 참가했으나 각각 독일ㆍ일본 미술가로 기록됐다.



최초의 한국 국적 참여 작가는 미디어 아티스트 육근병(55). 1992년 도쿠멘타 주전시장 건물과 마주보는 6m 높이 봉분을 세웠다. 그리고 20년 뒤, 양혜규(41), 전준호 & 문경원(43) 팀이 장르와 시공을 초월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제13회 카셀 도쿠멘타 현장 소식을 3회에 걸쳐 전한다.



7일 오후(현지시간) 카셀 중앙역 신역사(新驛舍) 뒤편의 낡은 벽돌 건물. 한때 군수산업으로 번영했던 이 소도시의 물자를 나르던 화물 전용 역사다. 플랫폼엔 더 이상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100개 가까운 검은 블라인드가 도열해 열차처럼 착착 소리를 내며 오르내렸다.



양혜규의 신작 ‘진입: 탈-과거 시제의 공학적 안무’다. 길이 45m에 달하는 이 검은 블라인드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한때 독일을 휩쓸었던 전체주의적 군대 행진 혹은 카드 섹션을 연상시킨다.



어디 독일뿐일까. 개인이 등장한 동시에 그 개인이 집단의 구성원으로 작용했고, 그게 바로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 믿었던 여러 나라의 근대화 과정이 그러했다.

이제는 버려진 이 역사가 근대의 꿈을 반추하듯, 기계적 제한 속에 움직이는 블라인드의 행렬은 공동의 목표로 달려가던 우리 아버지ㆍ할아버지들의 모습이다.



이 같은 근대화는 대부분 선진국에선 지나간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선 현재 진행형, 혹은 미래형이다.



블라인드를 뒤로 하고 양혜규가 말했다. “탈-과거 시제라는 세상에 없는 난해한 말을 제목에 붙인 것은, 우리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결코 되돌아가지는 않되 그렇다고 과거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였다.”



양씨는 10여 년째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카셀은 구서독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다. 변두리이면서도 독일선 보기 드문 곳에서 온 이민자들도 많아 통합이 어렵다. 향토성은 무너지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은 없어지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구조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미술계 인사들이 주 전시장에서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는 오후 8시 뉴스 첫머리에 이 작품과 함께 도쿠멘타 개막 소식을 전했다.



양혜규는 VIP 개막일인 7일 카셀 주립극장에서 연극 ‘죽음에 이르는 병’도 연출해 올렸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96)의 원작을 본인이 각색했고, 프랑스 여배우 잔느 발리바(44)가 출연했다. 구(舊)역사 작업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블라인드를 공학적 움직임으로 다뤘다면, 연극은 바람ㆍ냄새ㆍ목소리 등 그가 천착하는 일상 사물의 미묘함을 종합적으로 보여줬다.



도쿠멘타 13 총감독 캐롤린 크리스토프 바카기예프(55)는 전세계 기자들 500여 명이 모인 개막 기자회견에서 양혜규를 거론하며 “예술은 파괴된 현장, 재건된 현장, 건축적으로 포기된 곳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등 많은 것들에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양씨는 1970년대생 한국 미술가 중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2009년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다.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목소리와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색색의 블라인드, 향분사기, 선풍기 등을 설치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며 온몸으로 체험하는 설치를 제안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만나면 ‘아, 베니스의 그 작품?’이라고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 국제 미술제에 참여한다는 것의 영향력을 그렇게 실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카셀에서의 이번 작업은 일관성을 지키되 한 발 더 나아갔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카셀 도쿠멘타= 1955년 이후 초반엔 매 4년, 이후 매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 미술행사. 독일 나치정권 하에 자행됐던 반 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자각에서 출발했다. 예술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가장 진지한 시각 예술 현장 중 하나다. 제12회 도쿠멘타 땐 76만 명이 방문했다. 제13회 카셀 도쿠멘타는 9일 일반 개막해 9월 16일까지 100일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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