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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줄은 알았지만 … 가장 피말린 선거”

민주통합당 이해찬 신임 당대표는 당내 최다선 의원(6선)인데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 '원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인 그는 1952년생으로 올해 환갑이다. 정치인 치고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다. 새누리당 대선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70학번) 보다 한 살 아래이며, 70학번인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는 동갑이다. 같은 당 문재인·정동영 상임고문과 학번이 같다.



이해찬 민주당 새 대표는

원래 이 대표는 서울대 섬유공학과 71학번으로 입학했지만 사회학과에 재입학했다. 스스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가서 막스베버를 공부하고 싶어서 였다"고 말한다.



그런 그였지만 재입학하자마자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운명이 바뀌웠다. 특히 아버지 때문에 '전문데모꾼'이 됐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이 대표는 경선도중 "청양 이면장 집 세째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해왔다.



"유신때 학교가 휴교를 해서 집(충남 청양)에 내려갔더니,아버지가 '학생들이 다 집에 가면 데모는 누가 하느냐'고 한 방 먹였다. 그 다음날 바로 올라와 전문 학생운동 꾼이 됐다. 내 인생도 꼬이기 시작했다."(9일 당선후 가진 기자간담회)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당신이 사주해서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갔는데, 아버지는 내가 흔들릴까봐 면회 한번 안왔다. 딱 엽서 한장이 왔는데 '아들에게, 윗사람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잘해라. 건강에 유념해라. 애비씀'이 다였다"고도 했다.



그는 정계입문 후 야권의 대표적인 기획·정책통으로 성장했다. 95년 서울시장 선거(조순 당선), 97·2002년 대선(김대중·노무현 당선) 등에서 기획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당내 경선에선 유달리 약한 면모를 보였다.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정배 전 의원에 패했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정동영·손학규 고문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이번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선거 초반 이대표는 ‘이·박연대’(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카드)로 손 쉽게 대세를 장악하는 듯 했으나 ‘이·박 담합’이라는 상대주자들의 거센 역공을 만나면서 지역별 대의원 순회경선에서 판판이 김한길 후보에게 무너졌다.



열번의 순회경선에서 여덟번을 패한 끝에 승리한 그는 기자들과 만나 "한 표를 이겨도 이기긴 이길 줄 알았는데, 제가 지금까지 해본 선거 중 가장 어려운 선거였다. 흥행엔 아주 좋았겠지만 사람은 아주 피말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치가 생물이라는 걸 이번에 정말 실감했다. 정말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며 "소통을 잘했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선거였는데 그걸 잘못해서 처음부터 구도가 '이-박 담합' 구도로 짜여졌다"고 분석했다. 생방송 라디오 인터뷰 도중 곤란한 질문이 나오자 “사전 질문지대로 진행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독단적 태도로 구설에 올랐던 그는 "앞으론 (소통을)잘하겠다. 기자들하고도 잘 하겠다"고 덧붙였다.

▶용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13~17, 19대 의원, ▶민청학련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투옥 ▶광장서적, 돌베개 출판사 대표,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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