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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과 머리끄덩이녀

그해 6월은 맵고 무더웠다. 2년차 사진기자인 나는 거의 매일 출근하기 바쁘게 시위 현장으로 달려갔다. 어깨엔 두 대의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허리엔 방독면과 헬멧, 한 손엔 사다리를 들었다. 마치 외계인 같은 모습으로 하루 종일 시위 현장을 오가는 게 일과였다. 민주화 운동의 중심인 명동성당·서울역·종로·신촌 등으로. 1987년은 한국 민주화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서울대 박종철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했고, 6·10 대회 전날엔 연세대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이를 계기로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6월 항쟁이다.

조용철 칼럼

6월 26일 전국적으로 평화대행진이 열렸다. 그날 나는 부산 문현동 로터리에 있었다. 최루가스로 찌든 거리는 긴장감이 흘렀다. 어느 위치에 설까 망설였다. 최루가스를 덜 마시는 경찰 쪽인가 격렬한 현장을 찍을 수 있는 시위대 쪽인가. 허리에서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경찰과 시위대의 중간에 섰다. 검은 장갑차 페퍼포그의 다연발 최루탄이 불을 뿜었다. 흩어지는 시위대를 향해 연속 셔터를 눌렀다.

제멋대로 터지는 지랄탄이 도로 위에서 춤을 췄다. 뿌연 연기 속에서 마스크를 한 대학생들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셔터를 눌렀다. 36컷 흑백 필름이 멈춰 섰다. 필름을 갈아 끼워야 했다. 어! 어! 그 순간 웃통을 벗은 한 청년이 두 손을 쳐들고 ‘최루탄 쏘지 마라’ 절규하며 달려 나왔다.

아~. 나도 몰래 탄식이 나왔다. 내 카메라는 빈 총이었다. 이날 한국일보 고명진 기자는 특종을 했다. 6월 항쟁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사진 ‘아! 나의 조국’이다. 나는 그날 역사적 현장에 있었음을 말 못했다. 눈으로만 보고 찍지 못한 아쉬움과 낙종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다. 기자에게 낙종은 쓴 약이고 특종을 잉태하는 씨앗이라고.

지난달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일으킨 당권파에 대한 책임을 묻고 비례대표 사퇴를 의결한 전국운영위의 결정을 추인하기 위해 소집됐다. 당권파 이정희 공동대표가 사퇴를 밝히고 퇴장하면서 회의장은 긴장이 고조됐다. 비당권파의 유시민·심상정·조준호 공동대표가 단상에 앉고, 의장을 맡은 심 대표가 개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참관인석을 장악한 당권파 당원들은 “불법 중앙위 증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소동과 야유, 그리고 정회가 반복됐다.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언론에 공개된 행사, 설마 난장판으로 끝내지는 않겠지. 철수 준비를 했다. 그때 참관인석의 당원들이 단상 앞으로 몰려왔다. 심상치 않았다. 껐던 노트북을 다시 켰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들을 주시했다. 심 대표가 당헌 개정안을 상정하려 하자 수십 명이 단상으로 뛰어 올랐다. 막아서는 진행요원과 몸싸움이 시작됐다. 기자들도 단상에 뛰어올랐다. 내 카메라 앞으로 물병이 날아왔다.

조준호 대표가 멱살을 잡혀 끌려갔다. 주먹과 발길질로 난장판이 되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머리 위로 들었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그곳에 이른바 ‘머리끄덩이녀’가 있었다. 메모리칩 속에는 분노한 그녀가 조준호 대표의 머리채를 잡아 뜯고 있었다. 아수라장에서 거둬 올린 특종 사진이다.

폭력사태를 지켜보면서 25년 전 6월 항쟁이 불쑥 떠올랐다. 저들이 독재타도와 비폭력을 외쳤던 세력이 맞는가. 민주화를 위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세력, 내게 부채의식을 갖게 했던 그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날 일산 킨텍스에는 민주투사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를 짓밟고 정파와 조직의 이익만 좇는 불한당들이 있었다.

6월은 지금도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거리에 나서면 귓가에 25년 전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시민으로 돌아가 함께 외치고 싶었던 “독재타도 민주쟁취”. 요사이 그 6월 항쟁의 정신에 먹칠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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