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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철벽 기수문화

어느 술자리. 거나하게 취한 일행이 옆 테이블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 욕설이 한두 차례 오가고 주먹이 날아들 것만 같은 기세. 그때 무리 중 누군가가 묻는다.
“너 해병대 몇 기야?” 이 한마디로 상황은 바로 정리가 된다. 기수를 밝힌 뒤 거수 경례를 하고, 이내 자리는 하나가 된다. 훈훈함과 형제애마저 깃든다.

On Sunday

‘난 해병대 몇 기’라고 자랑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레퍼토리다. ‘언제, 어떤 조직에 들어갔느냐’는 기수 문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나타내는 사례다. 대학교 입학 학번에서부터 입사 기수, 군대 기수, 사법시험 기수 등 기수도 갖가지다.

공적인 영역에서 기수 문화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번 신임 대법관 제청 때도 그랬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대법관 제청의 ‘가이드 라인’을 사법연수원 13기로 정했다는 말이 돌았다. 고영한(11기) 법원행정처 차장, 김창석(13기) 법원도서관장, 김신(12기) 울산지방법원장, 김병화(15기) 인천지검장. 이번에 제청된 신임 대법관 후보 4명 중 법원 출신들은 모두 13기 안쪽이라는 점에서 이 말이 설득력을 얻었다.

4명의 제청이 발표된 뒤 야당과 시민단체, 여성계에서 항의가 거세다. 대법원 구성이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고, 특히 여성 후보가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도처에서 나온다.

김삼화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4명이나 대법관을 교체하는데, 여성을 한 사람도 제청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후보로 거론된 여성 법관들이 모두 18기, 19기라는 점에서 이번에도 대법원장이 기수 중심의 선택을 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다양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한 인사는 “여성 후보들이 몇몇 올라왔지만 기수가 낮았다”고 말해 여성 배제의 원인이 낮은 기수 탓이었음을 암시했다.
어느 자리에나 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 각 분야와 계층의 시각을 대변해야 할 대법원이니까 여성 대법관이 상당수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성인 전수안 대법관은 “아무리 남성 법관이여성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해도 여성 법관만 할 수는 없다. 일상 생활에서 겪으며 자라온 여성만의 경험과 감수성은 남성이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 대법관이 지금(2명)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소수이자 약자로 살아온 여성의 시각과 권익을 대변할 여성 대법관이 다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나 이번에 여성 배제 이유가 ‘기수’ 때문이라면 문제는 심각해 보인다. 역사의 퇴보라 할 만하다. 2004년 대전고법 부장판사이던 김영란 현 권익위원장이 8개 기수를 뛰어넘어 여성 최초로 대법관에 발탁된 선례마저 있지 않았나.

전수안 대법관이 다음 달 10일 퇴임하게 되면 여성 대법관은 박보영 대법관 홀로 남게 된다. 한 고위 여성 법관은 “대법원이 서열에 따라 큰오빠가 막내 여동생을 데리고 판결하는 곳은 아니지 않나. 대법원장이 어떤 생각으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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