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과학에 휩쓸려놓쳐버린소중한 것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소피스트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거지.”
초여름 주말 오후, 어느 자리에서 철학자 김용석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 이제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따르는 국가나 법, 교육에 대한 생각과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가 옳은지 모르겠다는 분노 섞인 푸념에 대해 철학자는 지금 이 시대를 이렇게 정의한 것이다.
의혹의 시대. 그렇다면 많은 이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이 무능하기에? 시대가 타락했기에? 세계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아니면 우리가 좀 더 철학적인 인간이 되었나?
어쩌면 우리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 앞에 봉착했거나, 상상할 수 없는 변화의 시기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자신이?

『메두사의 시선』.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변화하는 인간’에 대한 사유다. 저자는 20세기까지의 철학이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전제로 그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노력이었다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삶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생물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인간이 지금과 다른 존재로 진화해 갈 가능성이 명백해진 21세기에는 변화해 가는 인간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 철학의 기본 전제, 인간을 진화의 종점이자 철학의 유일한 대상으로 보던 관점을 폐기하고 새롭게 ‘인간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에 대한 사유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신화·과학·철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변화하는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변신의 서사인 신화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21세기 새로운 인간,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뇌과학, 진화생물학, 로봇 공학, 우주 개발 등 최첨단 과학의 성과들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이 인간과 함께 진화하며 맞게 될 변화에 대한 깊고 정교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종교적 믿음은 물론이고 과학적 탐구, 심지어 사회 질서에서도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감안할 때 모든 것이 변화하는 21세기에 인간에게 고정불변의 진리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의혹의 시작이고, 우리가 창조해야 할 현실이다.

김용석 선생님의 글은 항상 너무 이르게 우리를 찾아온다.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등을 찬찬히 읽어보면 지금 한창인 문화담론의 논의가 이미 10년 전 선생님의 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현실이 된 것을 해석하고 반성하는 ‘사후(事後)의 사유’가 아니라 미래를 통찰하고 준비하는 ‘사전(事前)의 사유’가 철학의 역할이라고 믿는 저자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머물지 않고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구체적인 실천으로 답하고자 하는 노력. 하지만 아쉽게도 너무 이르게 찾아왔기에 많은 이가 선생님의 글을 읽고 이야기하며 그것을 철학 하기 전에 우리 시선에서 멀어진다. 질주하는 과학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놓치고 가는 소중한 가치. 선생님의 저작들이 겨냥하는 지점은 항상 대중과의 소통, 일상으로 철학 하기인데, 특히 『메두사의 시선』은 ‘철학다운 삶’보다는 ‘과학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른 어떤 글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선생님은 철학자의 숙명은 ‘방황’이며 방황은 ‘무브먼트(movement)’이고 이것은 곧 ‘여행하고, 탐구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바야흐로 ‘인간 안’을 넘어 ‘인간 밖’을 방황할 때다. ‘이게 맞아?’ ‘정말 그래?’라고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인간 밖을 방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가까운 누군가에서부터 아주 먼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