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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고위층 자녀 19세 탈북자 "北이 낭만적?"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탈북 고교생 에반 김. [워싱턴=이자은 기자]
“탈북을 결심하기까지는 아주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을 탈출했다는 것만 놓고서 나라를 배신했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길을 개척했다고 봐줬으면 한다.”

 미국 버지니아의 요크타운 고등학교에 다니는 탈북자 에반 김(19)은 중앙일보·JT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임수경(민주통합당) 의원의 “변절자” 발언에 대해 “탈북자는 변절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11학년이다. 한국으로 치면 고교 2년생이다.

1993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2002년 부모와 함께 탈북해 한국에서 살다가 200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에겐 이름이 세 개다. 북한에서 부른 김주성, 한국에서의 김일국, 그리고 지금의 에반 김이다.

미국의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 출판회를 겸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 행사엔 에반이 쓴 45쪽짜리 에세이집 『세 개의 이름(Three Names)』이란 책도 전시됐다. 다음은 에반과의 일문일답.

에반 김의 에세이집 『세 개의 이름(Three Names)』 표지.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는.

 “지난해 여름 아버지가 일하시는 HRNK에서 인턴을 했다. 거기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어머니께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책을 쓰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책에 ‘굶주림(starvation)’이란 제목의 글과 그림이 있는데.

 “북한에서 살 때 우리 가족(에반의 아버지는 평양의 고위층이었다)과 달리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건 항상 배고팠다는 점이다. 먹을 것도 없고 필요한 기구들이 늘 부족했다. 겨울엔 따뜻한 이불도 제대로 없었다. 그걸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할아버지가 인민군 장성이었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잘 섬기라고 하셨다. 그땐 할아버지를 존경하며 나도 커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슬프고 안타깝다. 할아버지가 훈장을 받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그 노력의 대상은 북한이었다. 내 생각에 북한은 그런 할아버지의 희생을 받을 만한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책을 통해 그런 사람들이 북한에 수천, 수만 명이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임수경 의원을 아는가.

 “(뉴스를 보고) 안다. 북한을 탈북했다고 해서 변절자라고 보지 않았으면 한다. 자유와 희망을 찾아 나섰다고 봐달라. 아직도 한국에선 북한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뉴스와 소문으로 보는 것과 실상은 다르다.”

 -본인이 경험한 실상이란 뭔가.

 “북한에서 살 때 거의 매일 보던 광경이 있었다. 어물장에서 할머니가 음식을 찾는 장면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북한이란 나라는 시민을 위해 아무것도 못해주는구나, 어떻게 그리 살아가게 내버려두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북한에선 한국과 미국 사람을 보면 총으로 쏴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한국에 도착해 보니 실상이 달랐다. 다만 탈북자들을 보는 시각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꿈이 뭔가.

 “함께 탈북한 부모님을 빼고 가족들은 아직 북한에 살아 계신다.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북한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그분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든다. 나중에 의사가 돼 북한의 아픈 사람들에게 무료로 봉사하고 싶다.”

 에반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책 전시회가 열리는 6월 6일이 북한의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이라며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 친구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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