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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간판? 편견을 걷어찬 교수님

호서대 패션학과 류문상 교수(왼쪽에서 둘째)와 영국 웨스트민스터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최정민씨(왼쪽에서 셋째)가 5일 강의실에서 토론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5일 오전 충남 아산의 호서대 패션학과 강의실.

 류문상(44) 패션학과 교수와 제자인 최정민(23·여)씨가 학위 논문을 놓고 한창 토론 중이었다. 4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대에서 패션경영 석사과정을 수료한 최씨는 국내 화장품시장에 대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지도교수가 한국의 화장품 전문가 10명을 인터뷰해 논문에 녹이라는데 무슨 의미일까요.” 최씨의 질문에 류 교수는 “너의 가설을 전문가를 통해 검증받으라는 뜻”이라며 인터뷰 대상과 질문 등을 꼼꼼히 알려줬다. 옆에선 올 9월 영국의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는 같은 과의 김초롱(23)·임주희(25)씨가 유심히 듣고 있었다.

 평범한 지방대인 호서대(총장 강일구)에서, 그것도 11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패션학과에서 ‘작지만 큰 기적’이 움트고 있다. 2009년 이후 패션마케팅의 중심지인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킹스턴칼리지·브루넬대 패션경영대학원 등에 졸업생 7명을 합격시킨 것이다. 의류브랜드의 유통·경영을 가르치는 이들 대학은 영국 가디언지가 올해 발표한 예술·디자인 분야 대학(영국) 평가에서 브루넬대가 3위에 오르는 등 모두 상위권인 명문이다.

 이 같은 성과 뒤엔 류 교수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졸업 후 12년 동안 롯데그룹에서 근무하며 자라(ZARA)·유니클로 같은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던 그는 2007년 호서대에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마케팅을 공부한 직후였다. “평생 생물교사였던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컸다”고 했다.

 그러나 수업 분위기는 왠지 무거웠다. 술자리를 마련해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교수님이 열심히 가르치니까 수업은 잘 들을게요. 그런데 지방대 출신인 우리는 어차피 큰 회사엔 못 가잖아요.”

 지방대생들의 뿌리 깊은 패배감과 열등감이었다. 국내엔 매년 5000명 넘는 패션 전공자가 배출되지만 대기업 취업은 3%에 불과하다.

 류 교수는 자신감 회복 방안을 고민했다. 답은 영국 유학이었다. “패션마케팅 분야에서 영국 석사라면 충분히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요.” 영국의 석사과정이 1년이고 학비가 연 2000만원 정도로 비교적 싸다는 점도 고려했다.

 2008년 뜻있는 학생들을 모아 ‘4.5프로젝트’를 시작했다. 7학기 만에 학부를 마치고 1년은 영국 대학원에서 공부해 4년 반 만에 학사와 영국 석사를 모두 딴다는 목표였다.

 첫발은 뗐지만 산 너머 산이었다. “나중에 좌절할 게 뻔한데 괜히 아이들 허파에 바람 넣지 말라”며 반대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았다. 일부 교수는 “취업이 우선”이라며 반대했다.

 학생들의 부족한 영어실력도 난제였다. 류 교수는 토요일마다 학생들을 도서관에 모아 영어로 논문·학업계획서 쓰는 법을 가르쳤다. 방학 때는 어학원에 다니게 했다.

 대학원 입학에 필수인 실무경험을 쌓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지방대생들은 국내에선 인턴 자리도 얻기 힘들다. 류 교수는 인터넷쇼핑몰에 의류를 납품하는 회사를 직접 차려 학생들에게 실무경험을 쌓게 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는 2년 만에 첫 성과를 냈다. 박지영(30)씨가 2009년 웨스트민스터대 대학원에 합격했다. 지난해 1명에 이어 올해에는 5명이 영국의 4개 대학에 합격했다.

 잇따른 성공은 학교에 큰 자극이 됐다. 3학년 제성호(27)씨는 “예전엔 대부분 재수나 편입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학과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교수들도 재능 있는 학생들에겐 4.5 프로젝트 참여를 권한다. 그는 “대학 간판은 결승점이 아닌 출발점에 불과하다”며 “지방대도 노력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산=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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