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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졸면서 과징금 매긴 공정위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5일 오전 서울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 6층 심판정. 공정위 여직원의 말에 90명가량의 피심인과 방청객이 일제히 일어났다. 9명의 공정위 위원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전용문으로 들어온 위원들은 높은 단상 위 의자에 앉았다. 4대 강 담합 사건을 심사하는 전원회의 시작은 엄숙했다. 건설사 관계자 사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업당 수십, 수백억원대 과징금이 이날 회의에서 결판난다. 법복만 안 입었지, 공정위 위원들은 건설사들의 목숨줄을 쥔 ‘심판관’이나 다름없었다.

 분위기가 어이없이 흐트러진 건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20개 건설사 변호사가 차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중이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중복된 내용은 생략해 달라”고 했지만 비슷한 발표가 반복됐다. 그때 한 위원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조는 거였다. 건설사 발표는 3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졌고, 다른 위원 두세 명도 잠깐씩 졸았다. 긴장감은 간 데 없어졌고, 단상 위는 수면장을 방불케 했다.

 위원들이 깨어난 건 오후 질의응답 시간. 이번엔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합의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한 곳도 없네요?” 한 위원의 질문에 방청석이 술렁였다. A사 변호사가 재빨리 “우리는 합의 자체를 안 했다고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위원은 “B사가 C사로부터 다른 입찰을 양보받으려고 4대 강 입찰에 참여했다는데, 그 다른 입찰이 뭐죠?”라고 물었다. 오전에 B사 변호사가 세세히 설명했던 내용이었다.

 전원회의는 하루 만에 양측 의견 진술부터 제재 결정까지 모두 끝난다. 위원들로선 적잖은 정신노동이 불가피하다. 더군다나 이날 심사 대상 기업은 20곳이나 됐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내용을 다 소화하기 어려울 판이다. 그런데도 일부 위원은 조느라 이를 놓쳤다.

 물론 위원들이 미리 받은 소명자료를 꼼꼼히 읽었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혹시 위원들이 미리 결론을 내려놓았던 건 아닐까. 일각에선 “진술을 들으나 안 들으나 달라지는 게 없어 존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가뜩이나 4대 강 담합조사를 두고 공정위가 윗선 눈치를 보다가 정권 말에야 터뜨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회의 중 잠깐 존 건 사소한 실수다. 그래도 ‘세계 6~7위권 경쟁당국’이라는 한국 공정위에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과징금 부과와 전속고발 권한을 가진 공정위에 기업들은 벌벌 떤다. 공정위는 이날 8개 건설사에 1115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하지만 진짜 공정위의 힘은 막대한 과징금이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사건 처리에서 나온다. 작은 실수로 공정위 스스로 권위를 깎아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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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