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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서해에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강영진
논설위원
2007년 10월 4일 평양을 방문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0·4 선언’에 합의했다. 문건의 정식 명칭은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이 5항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구상이었다. 남북한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의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한강 하구 공동이용 등을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선 기대감이 부풀었다. 성공만 한다면 바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한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전문가 3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0·4선언’에 포함된 6개 항의 남북경협 합의에 대해 73%가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부정적 의견은 10.8%에 불과했다.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방안은 다른 경협 항목들보다 월등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남북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남북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한편으론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무력충돌까지 벌였던 현장을 평화지대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정말 가능하냐를 두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분위기도 강했다. 정작 합의 당사자인 김정일조차 정상회담에서 ‘정말 가능하냐’는 질문을 세 번이나 했다는 것이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의 증언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구상은 그만큼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승부욕이 담긴 건곤일척(乾坤一擲)이었다.

 그렇지만 임기를 몇 달 남기지 않은 노 대통령이 승부를 걸기엔 너무 큰 과제였다. “내가 발행한 어음을 후임자가 지불할 것”이라고 말해온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도 세종시 못지않은 ‘대못’을 박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의욕이 지나쳐 현실을 무시한 측면이 강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 입안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노 대통령은 법률가 아닙니까. NLL은 국제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본 겁니다. 그런 문제를 두고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걸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NLL 문제와 부닥치는 걸 우려하는 참모들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NLL 문제가 쉽게 넘을 수 없는 사안임은 ‘10·4 선언’이 발표된 지 두 달도 못 돼 분명해졌다. 서해공동어로수역 설치를 위한 군사적 보장조치를 위해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한다는 ‘10·4 선언’ 3항에 따라 그해 11월 말 평양에서 열린 국방장관회담이 결렬된 것이다.

 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은 NLL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해역에 같은 면적의 수역을 공동어로수역으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은 NLL 남쪽에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참에 NLL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논의가 일으킨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곧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10·4 선언’ 전체가 사실상 폐기됐다.

 이후 북한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등 연거푸 대형 도발을 감행했다. 그 결과물로 우리 군은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병력 1100명을 추가 배치했으며 2015년까지 3900억원을 들여 서북 도서 전체를 요새화하고 있다. 북한도 비파곶 부근에 해상저격여단 3000명을 배치하고 고속부양정 60~70대를 고암포 전진기지에 배치하는 등 더 큰 규모의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 한때 ‘평화’의 아이콘이 될 것으로 기대되던 서해 바다가 ‘동아시아 최대의 화약고’가 돼버린 것이다.

 새누리당 유력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의원은 지난 2월 한 연설에서 ‘10·4 선언’을 “남북 간에 존중돼야 할 약속”으로 평가했다. 또 황영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14조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적 부담도 “서로가 신뢰를 지키고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재원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연말 대선에서 박 의원이 집권하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구상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민주통합당이 집권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입만 열면 ‘10·4 선언’ 이행을 강조해온 북한이 발을 빼진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남북 간에 큰 화두(話頭)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여전히 NLL이다. 다행히 2007년과 달리 누가 집권하든 문제 해결에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몇 년 뒤 서해 바다에서 남북 어선들이 함께 고기 잡는 모습을 보게 될까. 북한의 NLL 도발이 집중됐던 봄 연평도 꽃게잡이철 끝물에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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