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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철이 녹슬고 있다



지난달 30일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제3고로 건설 현장. 이미 쇳물을 생산하고 있는 1, 2 고로 바로 옆에 지어지고 있는 3고로는 외관상으로는 거의 완성된 모습이었다. 현대제철은 2006년 3조255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3고로 건설을 추진했다. 1∼3고로의 건설비용만 총 9조5000억원이 들어갔다. 철강업계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현대제철 측은 “선대 정주영 회장 때부터 염원이던 제철소 건설의 꿈이 거의 다 실현됐다”며 “내년 9월 3고로 완공식이 대미를 장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양광·철강·LCD ‘치킨게임 삼국지’ <하> 공급과잉에 걸린 철강·LCD



 그러나 현대제철 앞에 장밋빛 미래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다. 철강재 공급 과잉의 여파가 현실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고로 옆 열연강판 공장에 쌓여있는 수백 개의 열연강판 더미들이 이를 말해준다. 3고로의 총 생산량 400만t 중 열연강판과 조선용 후판 물량은 각각 200만t. 현대제철 관계자는 “조선 경기가 좋지 않아 솔직히 후판 물량은 소화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태양광 못지않게 철강업계에도 공급과잉의 먹구름이 자욱하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 조선·해운업계에 불황이 닥치며 선박 수주가 줄었고 조선용 후판의 수요는 급감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는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시장을 견인하던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며 부동산·건설시장이 잇따라 침체했다.





 하지만 철강재 공급은 계속 늘었다. 우선 중국이 몇 년간 10% 안팎으로 조강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지난해 중국의 조강생산량은 무려 7억t에 달했다. 전 세계 조강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다. 중국 내수시장은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철강재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고 한국으로 밀려들었다. 올해 2월 중국 철강재의 재고 누적량은 1900만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였다.



 중국 철강사들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저가 공세를 폈다. 국내산 철강재 가격보다 30~40% 정도 쌌다. 지난달 4일 발표한 포스코경영연구소의 최신 중국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 철강재의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1180만t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일본 철강사들까지 가세했다. 신일본제철 등은 2009년부터 7년 동안 내린 적이 없던 자동차용 강판 가격을 10% 인하했다. 올해 1월에도 추가로 4%를 내렸다. 현재 냉연강판의 t당 유통가격은 중국이 580달러(약 69만원), 일본이 776달러(약 92만원), 한국이 109만원 수준이다.



 전반적인 수요는 급감했지만 공급량을 줄일 수는 없었다. 생산설비를 증설했기 때문이다. 포스코·현대제철을 비롯한 국내 철강업계는 소위 ‘잘나가던’ 2000년대 초반부터 공장의 생산량과 설비 증설을 계획해왔다. 당시 몇 년 후 불어닥칠 경기불황을 내다보기란 어려웠다. 중국의 성장에 힘입어 업계에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이 유행하던 때였다. 2009년 4850만t이던 국내 조강생산량은 지난해 6850만t으로 껑충 뛰었다.



 공급과잉의 여파는 올해 국내 철강사들의 1분기 실적을 강타했다. 포스코는 올해 1분기에 매출 9조4600억원, 영업이익 422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인 921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도 156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8% 줄었다. 동부제철은 1분기 매출이 8789억원으로 1년 전보다 12% 감소했으며, 20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동국제강 역시 19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동국제강은 오는 10일부터 6㎜ 이상 두께의 조선용 강판을 생산해온 경북 포항제강소의 제1후판공장 설비를 해체한다. 동국제강 측은 “연간 고정운영비 140억원을 포함해 약 3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지다 보니 철강재 가격 인하를 단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공급과잉을 이유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지만 오히려 철강재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중이다. 박기홍(54) 포스코 부사장은 지난 1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중국·일본 등의 철강사들과 가격 인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철강재 가격을 정상화해 영업이익 하락을 만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가격을 올려놓고 세계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계산이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뤄 다른 철강사에 비해 여유가 있는 현대제철 측도 “철강 시황이 좋지 않아 가격인상은 어려워 보인다”며 “그러나 가격동결을 사수하지 못하면 향후 실적 반등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철강업계의 사정이 나아질 만큼 경기가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경중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까지는 구조적으로 불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철강재 가격을 큰 폭으로 인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민수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도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 따라 지금보다 철강 수요가 점진적으로 나아진다 해도 내년엔 수요 회복에 대한 위험이 많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좋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혜경 기자



열연강판(熱延鋼板)



쇳물을 가공해 나온 평평한 판재 모양의 철강 반(半)제품인 슬래브를 고온으로 가열한 뒤 누르고 늘여서 두께를 얇게 만든 강판. 열연강판을 산(酸)으로 세척한 후 상온에서 압연하여 두께가 고르고 표면이 매끈하고 광택이 나게 만든 제품을 냉연(冷延)강판이라고 하며 이를 통해 자동차용 강판, 강관재, 건축자재 등을 만든다. 열연강판의 두께가 6㎜ 이상의 것을 일반적으로 후판(厚板)이라고 하며 선박, 보일러, 교량 등의 대형 구조물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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