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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특한 사도세자, 영조의 자랑이었다

1736년 영조가 사도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할 당시 반포한 글을 새긴 ‘장조 왕세자 책봉 죽책’(부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탕평군주’ 영조의 늦둥이로 태어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그러나 결국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스물여덟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1735~62)의 삶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사도세자 서거 25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돌아보는 특별전 ‘사도세자’를 다음 달 1일까지 연다.

서거 250주기 맞아 특별전



 사도세자는 사극이나 소설 속 비극의 인물로 자주 등장했지만, 그를 주제로 한 전시는 처음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국립고궁박물관을 비롯해 전국 19개 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는 관련 유물 100여 점이 한데 모였다.



 전시장 앞쪽에 자리잡은 ‘장조 왕세자 책봉 죽책(莊祖 王世子 冊封 竹冊)’은 어린 사도세자의 총명함과 아버지 영조의 기대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이 죽책에서 영조는 “내가 다행히도 늦게 너를 낳았는데 하늘이 또 남다른 자질을 주었다”며 “삼종(효종·현종·숙종)을 계승할 수 있을 것 같아 십년 동안 깊은 밤까지 걱정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팔도의 백성이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니 조정 관원 모두가 세자책봉의 경사를 기뻐한다”고 적었다. ‘동궁저하수서’는 15세부터 아버지의 지도 하에 대리청정을 했던 사도세자가 정승 조현명에게 쓴 글로, 문장이 조리 있고 글씨가 서법에 충실하다는 평이다.



 전시는 애증으로 얽힌 3대, ‘영조-사도세자-정조’의 글씨를 나란히 배치해 이들의 기량을 비교해볼 수 있도록 꾸몄다.



 특히 경기도 화성 용주사(龍珠寺) 유물이 사찰 창건 이래 처음으로 공개된다.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1789년 사도세자의 묘소를 경기도 화성으로 옮긴 후 명복을 빌기 위해 창설한 왕실 원찰(願刹)이다. 정조는 이후 가끔씩 용주사에 행차해 효심을 보였으며, 하사품을 내리기도 했다. 용주사 유물 중 정조의 친필 목각본인 ‘불설부모은중경(보물 1754호)’을 비롯해 사조세자의 위패로 추정되는 목조 원패, 향로 등 10여 점이 소개된다.



 전시를 기획한 김세영 학예연구사는 “사도세자에 대해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정신질환자’ ‘당쟁의 희생물’ 등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유물을 통해 본 사도세자는 기존의 불운한 이미지와는 달리 뛰어난 자질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28일 사도세자의 삶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열린다. 031-228-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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