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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우려·증거인멸·주거일정’ 판단 기준 … 검찰, 법원 완전 딴판

도주의 우려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시각 차이도 크다. 전과 7범이었던 피의자가 자동차 키를 훔쳐 차 안에 있던 1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들고 달아났다가 수배를 당해 체포됐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반면에 검찰은 “달아났다가 체포된 경우는 도주 우려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게 상식 아니냐”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미국으로 출국해 기소중지가 되었던 한 피의자가 여권 갱신을 위해 입국하자 검찰은 “수사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점을 들어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피의자가 “자진 입국했다”며 영장을 기각한 사례도 있다.

증거인멸 부분도 마찬가지다. 공범과 함께 피해자를 납치해 감금한 뒤 8억9000만원을 뜯어낸 피의자에 대해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불구속 상태인 공범에게 ‘허위 진술을 해달라’고까지 했으니 증거인멸 우려가 높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하지만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영장을 불허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영장이 기각된 경우도 있었다. “친구들과 1박2일로 스키장에 놀러 가겠다’는 여자친구와 말다툼을 하던 남자친구 A씨는 여자친구를 육교 밑으로 밀어 사망하게 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검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A씨가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A씨는 재판 끝에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23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한 범인을 법원이 풀어준 적도 있었다. 검찰은 ‘재범 우려가 높은 데다 피해자에게 다시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을 불허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정도의 사건으로 영장이 기각되면 구속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판사마다 다른 구속 기준을 통일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2008년 기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의 영장 기각률은 34%에 달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기각률이 다음으로 높은 곳은 제주지법으로 32%였다. 반면에 대구지법과 청주지법(19%), 대전지법(18%), 춘천지법(16%)은 기각률이 낮았다. 춘천지법의 경우엔 서울중앙지법과 무려 18%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형사정책연구원은 “법원이 위치한 지역특성에 따라 사건유형이 다를 수도 있지만 법원의 ‘분위기’ 때문에 기각률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발부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별로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전관 판사들이 영장 사건 수임에 발벗고 나서는 게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서울지역에서 영장 사건을 가장 많이 수임하는 변호사들 대부분이 전관”이라며 “전관예우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벗기 위해서라도 법원이 명확한 구속영장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윤성식 대법원 공보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법관 고유의 재판 사항”이라며 “대법원이 구체적인 사건과 관련해 일률적인 구속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법원마다 다른 영장 기각률에 대해서도 “지역적 특성과 접수되는 사건 유형 등에 따라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제주지법은 지역특성을 고려해 음주운전과 자연환경 침해 범죄에 대해선 다른 법원보다 엄한 기준을 갖고 있다. 관광지 특성상 자연환경이 한 번 파괴되면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구속영장을 적극적으로 발부한다는 취지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법원의 영장 발부율은 2004년 85.1%에서 2007년 78.2%, 2010년 74.6%, 2011년 74.3%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2007년 이후 법원이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의 혐의는 ‘무죄로 본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부터 영장 발부율이 떨어지는 추세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2006~2008년 실제 구속영장 기각 사례)에 따르면 법원의 기각 사유는 다음과 같다. 각 영장전담판사가 적시한 복수의 응답을 분석한 것인데, 도망 염려 없음(80.7%)과 증거인멸 염려 없음(73.7%)이 가장 많은 사유로 꼽혔다. 다음으로는 주거일정(44.5%)-범행 자백·반성(20.6%)-합의·고소 취소(10.3%)-초범(9.5%)-소명자료 부족(7.8%)-직업일정(7.4%)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형사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주거일정은 독립적인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망 염려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개인적 신상문제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지체장애자인 아버지와 실명 상태인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는 경우, 가족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사유로 구속을 허용하지 않기도 한다. 죄명 별로도 구속률(2008년 기준)은 다르게 나타난다. 강간(80.2%)과 강도(84.9%) 같은 강력범은 구속률이 높은 데 반해 뇌물(15.8%), 배임(23.%), 횡령(40.8%) 등은 비교적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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