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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잘 만드는 국회보다 법 지키는 국회 돼야”

조용철 기자
한국 정치판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던 조순형(77·사진) 의원이 정계(政界)를 떠났다. 제18대 국회가 마감한 지난달 29일, 의원회관을 나서며 마지막 몸담았던 자유선진당에도 탈당계를 제출했다. 1981년 5공 초 무소속으로 11대 국회에 첫발을 내디딘 후 31년 만이다. 저녁식사는 가급적 집에서 연극인인 부인 김금지(70)씨와 함께 하고, 회의가 없으면 주로 의회도서관에 머물며 독서를 즐겼던 그는 통상적인 정치인과는 좀 달랐다. 해방 정국의 정치 거물 조병옥 박사가 부친이고 작고한 6선의 조윤형 전 민한당 대표가 친형이지만 두주불사형에다 호방하던 부친이나 형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밟아온 정치 궤적에선 선친의 굵은 선이 떠올려진다. 잘못이라고 판단되거나 원칙에 어긋난다 싶으면 대통령이든, 당 지도부든 가차없이 비판했다. 상임위에서도 당론에 구애받지 않고 꼬장꼬장하게 질의하기로 유명했다. ‘쓴소리’는 그래서 얻은 별명이다. “아버님 같은 큰 정치인이 그립다”는 그에게서 정치인으로서의 마지막 ‘쓴소리’를 청해 들었다.

-30년 넘게 몸담은 정치가 지금 국민들로부터 크게 불신받고 있습니다. 소회가 어떠십니까.
“얼마 전에 일본의 신용평가가 두 단계나 낮춰져 한국하고 같아졌다는데, 그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국가적 리더십의 실종과 정치기능의 마비가 꼽혔죠.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도 부정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도 똑같아요. 그래서 18대 국회 4년을 되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정치가 다른 분야의 발전을 선도하고, 영역 간 조정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사회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증폭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쟁도 정도가 있고, 정치적 투쟁이나 정치적 대립도 한계가 있어야 되는데 그걸 훨씬 넘어서고 있어요. 여야 모두 책임이 큽니다. 정치인들의 정치 역량이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현재 거명되는 대선 후보들의 정치역량은 어떤가요.
“각자 장점이 있고 훌륭하지만 정치적 리더십 측면에서 보자면 선배들에 훨씬 못 미치는 거 아닌가요. 가장 중요한 게 대통령의 리더십인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등 과거 독재시절과 지금을 비교한다는 게 무리일지 모르겠으나 그때보다도 요즘 대통령들이 한참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리더십이란 게 없어요.”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이 대통령은 자신을 정치인으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정치와 국회는 당에 맡기면 된다. 대통령은 국정을 맡고, 특히 경제가 중요하니까 경제만 잘하면 된다.’ 뭐 이런 건데 참 잘못된 시각이죠. 현실정치에서 여당의 최고지도자는 대통령입니다. 정부와 집권여당을 합한 여권의 최고 정치인이죠. 마땅히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처음부터 그걸 포기했습니다. 직무유기죠. 18대 국회가 정치불신을 받고 집권당이 저렇게 무능해진 데 대해 이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정치의 최일선에서 국회를 상대하고, 야당과 대화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죠.
“바로 그 얘기죠. 이 대통령은 새벽 4시에 일어난다네요. ‘나같이 부지런한 대통령도 없다’고 말했다죠. 맞아요. 점퍼 입고 열심히 한 건 칭찬받을 일이지만 정치도 열심히 했어야죠. 여당 내부부터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정리하고, 국회도 설득하고 타협하고, 그래서 정부가 일할 수 있는 재정과 환경,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할 일 아닙니까. 그건 전혀 도외시하면서 대통령이 새벽부터 개별적인 사항들만 챙기고 쫓아다녀서야 어디 국정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대통령이 장관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선 대통령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맞잖아요.
“대통령이 대선 후보 경선에 관여하는 건 안 되겠죠.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고작 5년이잖아요. 당초 제시했던 선거공약 등을 5년 임기 안에 모두 마무리할 수 없단 말이죠. 그 때문이라도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승계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국가 장래를 볼 때 보수우파 정권이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이런 신념을 갖고 있다면 그 방향이 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참….”

-보수정권이 향후 10년을 더 맡아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남북관계도 있고요, 대한민국의 정체성, 역사적 정통성, 이런 것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 가지가 너무 혼란스럽잖아요. 교육도 잘못돼 있고요. 남북통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한 평화적 자유통일이 이뤄져야죠. 그게 헌법의 기본적 이념 아닙니까. 그걸 확고히 확립시키자면 보수우파 정권이 최소 5년, 아니 10년은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김대중(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당대표까지 지냈는데 그때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었나요.
“새천년민주당은 보수우파 정당으로 창당된 거였어요. DJ가 대통령 취임한 뒤부터 변질되긴 했지만… 사실 DJ도 창당 땐 1950년대 창당한 민주당을 승계한 정당이라고 강조했어요. 진보정권 10년이라고 하지만, DJ정부 5년과 노무현 대통령의 5년은 좀 다르죠. 6·15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남북관계에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DJ는 미군철수나 한·미동맹 폐기, 특히 국가보안법 폐기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DJ는 햇볕정책도 국가안보를 확고히 하면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노 대통령 5년과는 다르죠.”

-민주통합당이 과거 새천년민주당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말씀인가요.
“많이 다르죠. 지금 친노세력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하잖아요. 물론 민주계 세력도 상당히 있습니다만 지도자급을 보면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김대중 대통령은 평소 저희들한테 ‘정치는 국민들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한 걸음 먼저 나가거나 뒤처져도 안 되고, 반 걸음만 먼저 나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지금 민주통합당은 한 발이 아니라 두 발 세 발… 그것도 앞서가는 게 아니라 영 딴 데로 가고 있어요. 통합진보당과의 정책합의서를 보세요. 한·미동맹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같은 것도 있더군요. 재벌해체도 그렇고. 국가안보라든가 외교 같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시민세력의 참여를 허용한다는 등 상당히 위험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는 그런 내용이 있어요. 그때 한명숙 대표가 당론에 부치지도 않고 그냥(합의) 했습니다. 지금 만약 다시 한다면 민주당에서 그거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총선도 끝났고, 민주당에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안철수 교수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꽉 막힌 정당정치가 안철수 같은 사람을 불러들인 거죠. 저는 정말 못마땅하지만… 서울시장은 모르겠는데 대통령은 혼자선 안 되죠. 같이하는 정당이 있어야지.”

-자유선진당에서 만난 이회창 전 총재, 어떤 분이시던가요.
“그분이야말로 참다운 보수정치인이죠. 인격도 훌륭하고 경륜이나 경력 면에서도 사실 현존 정치인 중에 그만큼 갖춘 이도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치란 게 이상해요. 그런 분이 대통령이 안 되더라고요. 미국도 그렇다고 하지만….”

-이 전 총재가 대권에 또다시 도전할까요.
“에이, 이젠 아니죠. 정치은퇴까진 몰라도 대선 출마는 그렇죠.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나설 것 같지 않은데, 또 그게 아닌 것도 같고….”

-선친인 조병옥 박사의 정치철학에서 본받은 게 있습니까.
“아버님은 늘 ‘개인보다 당, 당보다는 국가’라는 신조를 가슴에 담고 행동하셨어요. 특히 야당 지도자로서 정치 위기를 맞을 때마다 그런 신조 아래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어요. 국가보안법 파동, 협상선거법, 재일교포 북송문제 등 여야 극한 대립 때 아버님은 국가 이익을 먼저 생각하시고 초당적인 결정을 하시곤 했어요. 정말로 큰 정치를 하셨습니다. 저도 그 신조를 마음속에 새기려 했습니다만… 미국에 수술하러 떠나실 때 기자회견에선 ‘생(生)과 귀(貴, 명예)와 부(富)에 애착하는 자와는 천하를 논의할 수 없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명언도 남기셨죠.
“결단을 내리실 때마다 여론과 당내 반대파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으셨지만 흔들리지 않으셨어요. 한참 지난 뒤에야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모두들 수긍하곤 했죠. 공격받을 때도 회피하지 않고 ‘내가 책임진다’면서 반대론자들과 정면으로 맞서 토론하셨는데요, 그 당시 하신 말씀이죠. 요즘 정치판을 보며 그런 진정한 리더십, ‘초가삼간론’이 떠올려지곤 합니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인들로부터 ‘가장 닮고 싶은 의원’에 뽑히셨던데, 선친이 좋아하시겠어요.
“아버님에 비할 수 있나요. 한참 부족하죠. 나름대로 국회의원 본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해왔다곤 하지만 닮고 싶은 의원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제가 걸어온 길이 혹여 참고는 되지 않을까 싶네요. 옳다고 생각한 대로, 신념에 반할 땐 또 그대로 행동한 게 좋게 평가받은 거 같습니다.”

-잘못했다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뒤 처음 치러진 대선에서 야당의 양 김씨가 후보 단일화를 못하고 각각 출마했잖아요. 그때 실망해서 양김 쪽 당에 가지 않고 한겨레민주당이란 신당을 만들었는데, 그게 너무나 순진했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 바람에 13대 선거에서 제가 낙선했잖아요. 그래서 5공 청문회에도 참여하지 못해 아쉽고요. 물론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만 순진했고 만용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당시 저와 동지들은 후보 단일화를 못 이룬 야당이 국민들에게 버림받아 공멸할 거로 봤어요. 우리가 중심이 돼서 야당을 재건하자 그런 생각을 했던 거죠.”

-양김이 단일화를 못한 건 무척 아쉬운 대목이죠.
“그때 두 분이 단합했더라면 군정을 조기 종식시켰을 테고, 이승만 장기집권을 종결시킨 정통 민주세력이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세력이 되었을 거고요. 그러면 줄잡아 20년은 집권할 수 있었을 것이고 정치발전도 크게 이룰 수 있었을 겁니다. 두 사람이 본인들 생각만 했지, 후계자도 안 키워 놓고… 생각할수록 안타깝죠. 두 사람이 쫙 갈라져선 한 쪽은 잘 안 되니까 신군부하고 손잡고, 한 분은 또 나름대로 과거세력과 손잡고. 고작 5년씩 집권하곤 끝나버렸으니 그게 뭡니까. 지역갈등만 키워 놓고.”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인가요.
“1987년 6·29 선언을 이끌어냈고 직선제를 쟁취한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죠. 또 5·18 특별법 제정 당시 법사위원으로 있었는데 함께 처리한 법안 중 ‘반인도적 범죄’, 즉 집단학살 등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조항을 만들어 통과시켰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처벌근거도 거기서 나왔어요. 그 조항은 국제법상으로만 인정돼 왔는데 그걸 국내법 속에 도입한 겁니다. 별로 알려지지는 않은 법이지만 의미가 상당히 큽니다. 광주민주항쟁 관련 범죄자를 처단하는 데도 이론적 근거가 됐고요. 앞으로 북한도 해당될 겁니다.”

-후배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을 잘 만드는 국회보다는 법을 지키는 국회가 되도록 행동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매 임기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발언과 행동도 자유로워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치 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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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