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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⑧ 우암 송시열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우암(尤庵) 송시열은 1607년 충청도 옥천군의 구룡촌 외가에서 태어났다. 27세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면서 주목을 받아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고, 효종 때에는 북벌계획을 주도했으며 우의정을 역임했다.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순으로 소개한다

우암 송시열은 효종(봉림대군)이 즉위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1607년(선조 40) 충청도 옥천군의 구룡촌 외가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친척인 송준길과 함께 공부하면서 훗날 양송(兩宋)으로 불리는 특별한 친분을 맺었다. 12세 때는 아버지로부터 『(격몽요결)擊蒙要訣』과 『(기묘록)己卯錄)』을 배우면서 주자와 이이와 조광조를 흠모하게 된다.

그는 27세 때 생원시에서 『주역』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오는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순환해 움직이는 것을 도라고 이른다’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논술해 장원으로 합격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그의 명성은 한양에까지 알려져 2년 뒤인 1635년에는 봉림대군(효종)의 사부로 임명된다.

성리학적 원칙을 고수했던 송시열은 오랑캐 나라로 여겨왔던 청나라가 조선을 유린하자, 낙향해 10여 년간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그만큼 그는 유교적 정통성을 중시했다. 이미 청나라로부터 타격을 받아 재기가 불가능한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할 만큼 성리학적 이념과 원칙을 고수한 독불장군이었다.

효종은 1649년 즉위하자마자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계획을 추진하면서 송시열을 중용했다. 임금과 옛 스승의 만남이어서 서로의 교감은 특별했을 것이다.

송시열은 주자의 가르침을 한 획이라도 고치는 것 자체가 불경한 행위라고 여긴 인물이었고, 효종 또한 호시탐탐 청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한 인물이었다.

효종이 북벌계획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그가 청나라에 머무는 동안 몽고와의 전쟁 등에 강제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명나라가 망하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부강한 조선 건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만동묘(萬東廟)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명나라 신종을 제사 지내기 위해, 1704년(숙종 30) 충북 괴산군 청천면화양동에 지은 사당. 송시열의 유지에 따라 제자 권상하가 유림을 동원해 지었다. 화양서원이라 해 도산서원 등과 함께 4대 서원이었으나 지금은 만동묘정비(지방기념물 25)만 남아있다 [사진=이영관 교수]

하지만 그는 정치적 이상과 현실정치를 혼돈한 어리석은 군주였다. 조선과 청나라의 국력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실현 가능한 북벌론을 제기했다기보다 오만한 청나라를 혼내주어야만 된다는 자존심과 대의명분에 집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우암 또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학자로서, 도덕적인 인간의 관점에서 송시열의 북벌론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 간의 관계는 도덕이나 명분보다 힘과 실리에 의해 형성된다는 외교 전략의 보편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청나라를 노골적으로 배척했던 송시열의 정치철학은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효종이 주도하고 송시열이 뒷받침했던 북벌계획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1659년 5월 효종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송시열의 북벌계획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한민족의 자존심을 되돌아보게 했고, 부강한 조선 건설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국력을 고려할 때 청나라를 공격한다는 논리는 구호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의 냉혹한 힘의 논리보다 주자학에 갇혀 성리학적 명분에 집착했던 송시열의 리더십은 국익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영관 교수
이영관 교수=1964년 충남 아산 출생,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주요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조선견문록』『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등이 있다

글=장찬우 기자
사진= 이영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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