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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땅…중국인들 열광하는 '신상' 여행지


















세상에는 아직도 비경이라는 게 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낱낱이 까발려진, 또는 그렇다고 믿는 디지털 세계를 사는 인간에게 지구가 누천 년 세월을 꼭꼭 숨겨두었다가 어느 날 불쑥 선물처럼 내놓은 천상의 풍경이 있다.구채구(九寨溝). 중국어 표기법으로 ‘주자이거우’라고 적는 중국 최후의 비경 앞에 섰을 때 맨 처음 떠오른 낱말은, 뜬금없게도 ‘다행’이라는 두 글자였다. 세상에 아직도 비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 내쉬는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었다. 먼 나라로 떠나는 일이 이제는 일상처럼 익숙해진 현실에서 구채구는 정말 오랜만에 여행자의 메마른 가슴을 거세게 두드렸다. 구채구는 요즘 가장 뜨거운 중국 여행지다. 우리나라만 요란을 떠는 게 아니다. 중국인에게도 가장 각광받는 관광지다. 여기엔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사연이 숨어 있다. 그 사연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구채구 여행기를 싣는다. 참, 중국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구채구라고 쓰는 이유는 태산(太山)을 ‘타이산’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와 같다. 구채구라고 불렀을 때에야 비로소 구채구에 어린 신비로운 기운, 즉 ‘아홉 개 마을이 있는 계곡’이란 뜻이 오롯해진다.


중국 대륙 서쪽 쓰촨(四川)성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장족(藏族:티베트족) 자치주 심심산중에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구채구가 박혀 있다. 중국 정부가 가상의 금을 그어 쓰촨성 소속이 되었지만, 대대로 장족의 터전이었으므로 금의 서쪽 너머 티베트와 산자락과 물줄기를 공유하는 정서상의 티베트 지역이다.

말하자면 구채구는 해발 2140~4558m 사이 산악지대에 형성된 계곡이다. 험한 산줄기 깊숙한 안쪽으로 빙하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데, 어느 골에 머물러서는 호수가 되고 어느 벼랑에 이르러서는 폭포를 이루어 55㎞ 길이의 물길을 이룬다. 이 물길 언저리에 장족 마을 9개가 띄엄띄엄 들어서 있다. 하여 이름이 구채구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그런 계곡 타령일 수 있다. 하나 전설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워낙 오지에 꼭꼭 틀어박혀 있는 바람에 구채구는 1만 년 중국 역사에서 한 번도 존재를 드러낸 적이 없다. 중국 정부가 구채구의 존재를 확인한 게 1975년이었다. 어느 벌목공이 산을 헤매다 이 계곡에 발을 디딘 게 구채구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가 됐다. 이 계곡에 살던 장족도 그때 비로소 구채구 바깥 세상, 다시 말해 한족과 처음 접촉을 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이내 구채구 보호정책에 착수했다. 7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유네스코도 92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했다.

지금 중국인이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구채구를 꼽은 이유도 구채구가 알려진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구채구가 발견된 게 겨우 30년쯤 전 일이니, 1만 년 중국 역사 앞에서 보면 갓 나온 신상품인 셈이다. 더욱이 4년 전 쓰촨성 대지진으로 구채구 개발작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아직도 구채구는 중국에서도 미지의 신세계로 남아 있다.

중국의 수많은 명승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1만 년 넘는 중국 문화의 흔적이 어떻게든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백(701~762)·두보(712~770)·소동파(1036~1101) 등 내로라하는 문인의 글귀가 새겨져 있거나, 먼 옛날 황제를 위해 놓았다는 돌계단이 까마득히 포개져 있거나, 깎아지르는 절벽 위에 암자나 정자가 달랑 놓여져 있거나, 이도 아니면 마오쩌둥이나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에 관한 일화가 얽혀 있다.

그러나 구채구에는 달랑 자연만 있다. 중국이 으스대는 허다한 명승지 가운데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은 구채구가 유일하다. 전설에서나 존재하는 비경에는 전설이 덧칠될 수 없다는 이치를 구채구는 몸소 증명한다.


구채구 물빛서 수십만개의 파란색을 보다

구채구는 넓다. 55㎞ 길이의 계곡을 따라 호수 114개와 폭포 17개, 급류 11개가 있다. 구채구 입구 높이가 해발 2000m가 조금 넘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장해(長海)가 해발 3500~4500m 지대에 있다. 3000m 이상 오르면 머리가 지근대며 고산병이 온다. 두 발로 걸어서는 호수 서너 개도 못 돌아보고 만다.

하여 구채구 입구에서 셔틀버스가 출발한다. 200대가 넘는 셔틀버스가 온종일 구채구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이 호수에서 저 호수로 관광객을 실어나른다. 오전 7시부터 셔틀버스가 운행하는데 관광객 수만 명이 셔틀버스를 타려고 긴 줄을 선다. 그 긴 줄의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왜 이 많은 인파가 허구한 날 구채구에 모일까. 그건 물빛 때문이다. 구채구는 물빛이 다르다. 아니다. ‘다르다’는 표현은 구채구의 오묘한 색깔 앞에서 너무 허약한 수사다. 허풍 센 중국인의 표현을 빌리면 “구채구 물을 보면 다른 곳의 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적어도 이 정도 과장법이라야 구채구 앞에서 면목이 선다. 구채구 물빛은 형용을 거부한다. 그저 입이 벌어지고 감탄이 터진다.

파란색이다. 세상의 모든 물빛처럼 구채구 물빛도 파란색이다. 한데 수십만 개의 파란색이다. 호수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물에 비친 산 그림자에 따라, 물에 잠긴 수초와 나무에 따라, 물에 내려앉는 빛의 기울기와 강도에 따라 구채구 파란색은 수십만 개로 변화하며 조화를 부린다. 오화해(五花海)의 물빛이 다섯 송이 꽃이 핀 듯이 현란하다면, 8㎞ 길이의 가장 큰 호수인 장해는 대양 모양 하염없이 푸르르다. 경해(鏡海)의 물빛이 이름처럼 거울같이 맑다면, 영화 ‘영웅’에서 두 무사가 물 수제비를 뜨듯이 수면을 사뿐히 밟고 다니던 장면을 촬영했던 전죽해(箭竹海)의 물빛은 짙은 녹색이어서 심오하다.

구채구는 파란색·연두색·쪽빛·녹색·옥색·청색·남색을 넘어 코발드 블루, 인디언 블루, 아무튼 파란색으로 통칭되는 세상의 모든 파란색을 다 거느린다.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을 때 누군가 이 계곡에 물감을 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많은 파란색이 저절로 나올 수는 없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황룽의 기념비.



구채구에 흐르는 물에는 300만 년 전 빙하 녹은 물이 그대로 고여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빙하 침전물에 탄산칼슘 성분이 있어 물에 잠긴 나무도 썩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고, 신비로운 색을 띨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자료를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과학은 사람이 받은 감동까지 설명하지 못한다.

참, 구채구에 있는 호수 이름엔 하나같이 바다(海)가 붙는다. 앞서 열거했던 오화해·장해·경해·전죽해 따위가 모두 호수다. 장족이 그렇게 불렀다. 평생 바다라고는 구경한 적 없는, 그러나 산 아래 세상에는 바다라는 게 있다는 걸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산중인(山中人)이 바다를 상상하며 호수 114개에 하나씩 ‘무슨 바다’ ‘무슨 바다’ 이름을 붙였다. 연유를 알고 나서 다시 이름을 부른다. 어째 서럽다.


●여행 정보=서울에서 서너 시간 거리인 청두(省都)가 구채구 여행의 기점이다. 삼국시대 촉나라의 수도였던 청두는 가볼 곳이 많은 고대 도시다. 제갈량을 기린 사당인 무후사(武侯祠), 당나라 시인 두보가 4년을 머물렀다는 두보초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낙산대불(樂山大佛) 등을 거느리고 있다.

구채구에서 120㎞쯤 떨어진 곳에 구채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황룽(黃龍)이 있다. 해발 3040~3558m에 들어선 계곡 지대로 여기 물빛도 구채구 못지 않게 오묘하다. 구채구보다 높은 곳에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6.2㎞ 구간을 걸어서 내려온다.

청두에서 구채구는 약 460㎞ 떨어져 있다. 이동 방법은 두 가지다. 열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만에 가거나. 두 방법 모두 장단점이 뚜렷하다. 버스를 타면 오랜 시간에 걸쳐 고지대로 가기 때문에 고산병 우려가 적다. 하나 인내심이 필요하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비행기를 탈 때도 기다림은 감수해야 한다. 구채구 입구인 구황공항이 해발 3500m 고산지대에 있어 항공편 연착이 다반사다. 구황공항에 내리자마자 고산병 증세가 시작된다.

국내 여행사의 패키지상품은 보통 청두와 황룽을 포함한다. 하나투어(www.hanatour.com) 상품이 대표적이다. 청두에서 구채구까지 교통편에 따라 가격이 나뉜다. 5일 여정이 74만9000~84만9000원, 6일 여정이 99만9000~179만9000원. 1577-1233.

글=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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