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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유로존의 ‘두더지게임’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돌고 돌아 다시 그리스다. 최근 2년간 그리스를 중심으로 벌어진 국제금융시장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노라면 마치 두더지게임을 보는 듯하다. 두 차례의 구제금융, 민간채권자들의 손실 감수(Hair-cut),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공급이라는 망치질이 계속되지만 디폴트 우려는 반복해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리스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미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들어서 있는 구제금융 대열에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합류하리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리스 불씨가 유로존이라는 큰 산으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채무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동성(Liquidity) 위기와 지급불능(Solvency) 위기가 그것이다. 유동성 위기는 단기 유동성 부족이 원인이다. 경제 펀더멘털과 장기적인 지급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구제금융이나 유동성을 지원받으면 해결할 수 있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과 원화가치 하락, 구조조정 등을 통해 비교적 단시간에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 유럽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는 지급불능 위기에 가깝다. 취약한 재정 여건이나 경제 펀더멘털이 일부 국가의 장기 지급 능력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과 IMF는 이미 그리스 등 세 나라에 40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약속했다. ECB도 1조 유로가 넘는 장기 유동성 공급(LTRO)에 나섰다. 그럼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건 유럽 재정위기가 근본적으로 지급불능 위기이기 때문이다.

 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이 빚을 갚아나가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독일이 요구하는 재정긴축은 성장을 위축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성장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방안은 이미 시도를 해봤다. 유로존 국가들은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대규모 국채를 발행했다. 이 돈으로 성장세를 회복시켜보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재정건전성만 크게 나빠졌을 뿐 기대했던 성장 촉진과 재정수입 증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답은 결국 정부 지출을 크게 늘리기보다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대한 지출은 줄이고 생산성이 높은 부문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지난 2010년, 금융불안에서 비롯된 32차례의 국가채무 위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과잉부채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식이 4가지로 나타났다. 구조조정을 통한 긴축(Belt-tightening), 빠른 성장을 통한 부채 축소, 높은 인플레이션을 통한 채무가치 희석, 그리고 국가부도(Default)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된 위기극복 경로는 허리띠 졸라매기, 즉 긴축이었다. 전체의 절반인 16차례다. 대공황 직후인 1933~37년 미국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77년 25%에 달하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던 스페인 등 8차례 위기에선 인플레이션을 통해 정부채무를 줄이는 방식을 썼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외채위기 등 7차례는 디폴트 사례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성장을 통한 부채 축소는 단 한 차례만 실행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특수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국가채무가 줄어든 게 유일하다. 전쟁 기간이 아닐 때 이를 달성한 사례는 아직 없다. 성장만을 통한 부채 축소가 이상론에 가깝다는 걸 보여준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부채 축소 방안은 경제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긴축이 될 것이다. 단순한 재정긴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전반에 대한 체질 개선을 통해 미래의 성장잠재력과 장기적 지급능력을 확충하는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물론 현재의 유로존 위기를 과거 개별 국가들의 사례와 무조건 동일시할 수는 없다. 정치적·경제적 필요에 의해 묶여진 통화공동체라는 점에서 대처 방식이 개별국가 차원과는 달라질 수 있어서다. 유로존에는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독일도 한 배를 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독일 국민의 끝없는 양보를 전제로 하고 있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유로본드의 도입이나 유로존 재정통합 같은 문제가 단기간 내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유럽의 재정위기를 관통하고 있는 큰 흐름이자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독일의 양보와 유럽 위기국가들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어느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지가 될 것이다. 양자 간 줄다리기라는 큰 그림의 가닥이 잡혀야 3년째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Muddling through)’ 유럽 재정위기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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