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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고금통의를 마치면서

이덕일
역사평론가
시절이 하수상할 때 잘못 나서면 뒤끝이 좋지 않다. 그래서 세상을 피해 숨는 은자(隱者)들이 있었다. 은자는 야은(野隱)과 이은(吏隱)으로 나눈다. 야은은 초야에 숨어 살고, 이은은 낮은 벼슬이나 장사 등을 하면서 세상 속에 숨어 산다.

 공자는 14년간의 주유(周遊) 중에 여러 은자를 만났다. 자로에게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조롱했던 걸닉(桀溺)이 야은이라면, 공자를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라고 비웃었던 성문지기는 이은이었다. 『한서(漢書)』 ‘왕공양공포 열전’에 나오는 촉(蜀)땅의 엄군평(嚴君平)이란 복사(卜師)도 이은이다. 그는 “점치는 것은 천업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면서 하루 100전(錢)만 벌면 문을 닫고 노자(老子)를 공부했다.

 은자라고 다 고종명(考終命)하는 것도 아니다. 위(魏)나라 혜강(?康)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이었지만 사형당했다. 죽기 직전 “내가 죽은 후에는 이 곡(曲)이 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한 일화가 유명하다. 양(梁) 무제(武帝)가 모산(茅山)에 은거한 도홍경(陶弘景)을 부르자 소 두 마리 그림으로 거절했다. 한 마리는 수초(水草) 사이에서 노니는 소였고 한 마리는 머리에 금롱(金籠)을 쓰고 채찍을 맞는 소였는데, 양 무제가 웃으면서 등용을 포기했다고 『남사(南史)』 ‘도홍경 열전’은 전한다. 은자들은 단순히 세상 꼴 보기 싫어서 은거한 것이 아니라 천지의 기운이 막힌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주역(周易)』 ‘곤괘(坤卦)’의 “하늘과 땅이 변화하면 풀과 나무가 무성하지만 하늘과 땅이 막히면 어진 이가 숨는다(天地變化, 草木蕃, 天地閉, 賢人隱)”는 구절이 이를 뜻한다. 충무공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죽지 않고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소인배들의 세상과 맞지 않았던 그의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만든 말이다. 공자는 자로에게 걸닉의 조롱을 전해 듣고는 크게 낙담하면서도, “새, 짐승과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인재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권력욕을 드러내는 사이비 은자가 아니라 공자처럼 조롱당하면서도 ‘이 사람들과 더불어’ 조롱받는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공자나 이순신이 제 한 몸만 건사하려 했다면 세상은 어찌 되었겠는가? 숨은 은자보다 묻힌 인재들을 알아보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고금통의를 마친다. 지금처럼 붓 한 자루 가지고 사해(史海)를 항해하다 보면 어느 항구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으리라. 그간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제현께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한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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