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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연구원에 ‘날개’를

건국 이후 지난 60여 년간의 대한민국 역사는 앞선 것을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그 성취를 생각하면 자랑스럽다. 그러나 다음 60년의 대한민국 역사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는지, 못 내는지에 의해 승부가 가려질 것이다. 새로운 생각, 칸막이 처졌던 지식과 학문의 융합, 과학과 인문학·철학·예술의 만남이 바로 21세기 의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기초과학연구원이 출범했다. 기초과학 강국을 위한 대단원의 서막이 마침내 열린 것이다. 서울대 민동필 교수를 비롯해 과학과 다른 분야와의 만남을 꿈꿔온 과학·예술·인문학 교수들은 2005년 ‘랑콩트르(Rencontre·만남)’를 결성했었다. 과학과 예술이 만나서 새로운 창조적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꿈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그 씨앗은 땅을 뚫고 나와 싹이 텄고 그 덕분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이 2011년 시작됐다. 이처럼 기초과학연구원이 출범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과 이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주생성의 신비를 푸는 것과 같은, 당장에는 아무런 응용가치가 없어 보이는 기초과학이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지식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세상에 내어놓는 뿌리가 된다며 정치권과 사회를 향해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던 수많은 과학자가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주장은 꿈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월성·개방성·자율성·창의성을 운영철학으로 하는 기초과학연구원은 먼저 우수한 ‘사람’을 유치하고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진두지휘하는 전권을 부여하는 혁신적 연구단 구성 방식을 도입했다. 국내 과학계는 연구의 자율성에 목말라해 왔다. 그래서 기초과학연구원의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연구 환경에 기반한 연구 성과와 운영이 향후 정부출연연구소의 새로운 롤 모델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갈망하는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된 연구소는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놀라운 것은 반세기 전 과학기술 발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KIST 역시 출범 당시 최대한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게 하기 위해 재단법인 형태로 출범했으며 정부의 재정지원은 받되 정부의 회계감사나 사업계획의 승인을 받지 않고 보고만 받는 것으로 출범했던 것이다.

그러나 KIST 출범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출연 관련 법뿐 아니라 기초과학연구원의 근거가 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서조차 연구원은 매 회계연도의 사업계획서와 예산서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그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연구의 자율성이 정부의 간섭으로 언제든지 침해당할 수 있는 법적 독소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진보가 아니라 퇴보를 향해 가는 아이러니 아닌가.

이러한 이유로 ‘승인’을 ‘보고’로 바꾸는 개정안이 18대 국회에 제출됐으나 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연구의 자율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자율성을 회복하는 문제는 2012년 아직도 유효한 이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최고책임자를 비롯해 정부와 정치권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과 연구자 존중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기초과학연구원이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율적 연구환경에서,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기초과학의 꽃을 피우고 인류에 공헌하는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과학이 추구하는 혁신과 자유의 정신이 함께 빛나게 될 날을 기대한다.



박영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위원. 서울대 졸업(83년)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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