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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 빠져 산 25년 “문학을 기부합니다”

‘월간 에세이’ 원종성 주간이 지난 25년간 한 호도 빠짐없이 발간한 잡지 위에서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다. 수필가와 사업가, 그 둘의 맞물림에는 남다른 애정과 노력이 있어야만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월간 에세이’가 이달로 창간 25주년을 맞았다. ‘월간 에세이’ 2012년 5월호는 25주년 기념호이자 301번째 책이다. 25년간 단 한번의 결호(缺號)도 없었다. 이것은 어느 한 문예지가 수필을 고집스레 붙들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 문학의 영토에서 수필이 차지하는 좁은 면적을 떠올리면, 이건 좀 놀라운 일이다.

‘월간 에세이’ 원종성 주간



 이 놀라운 일의 기획자는 원종성(75) 주간이다. 그는 수필의 문학적 가치를 진즉 알아봤다. 그러니까 꼭 25년 전이다. 원 주간은 당시 잘 나가는 기업인이었다. 동양에레베이터·동양중공업 회장으로 있었다. 젊어서 ‘문청’이었던 그는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한 상태였다. 종종 에세이를 발표해온 수필가였지만, 본격 수필 전문 문예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월간 에세이’다. 1987년 5월이었다.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에요. 문예지는 장사가 안 된다고들 하는데 돈을 버는 건 나중 문제죠. 책을 만들면서 공부도 할 수 있고 또 좋은 글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았어요.”



 하긴 돈을 벌 작정이었으면 시작해선 안 될 일이었다. 우리 문단에 문예지로 돈을 벌었다는 ‘전설’은 알려진 게 없다. 원 주간은 “한 번도 책을 사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문화보급 운동가”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홀린 듯” 문예지 발간에 몰두했다. 동양에레베이터 회장실이 곧 ‘월간 에세이’ 편집실이었다. 그는 회장실 옆 편집실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편집실에 한 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아 회사 중역들이 결재를 받기도 힘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월간 에세이’에는 25년간 1만 5000명이 넘는 필자들이 거쳐갔다. 김동리·피천득·이윤기 등 유명 문인이 수두룩하다. 필자 목록에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 등도 포함돼 있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5월호에 수필을 기고했는데, 부모님을 비극적으로 잃은 개인사를 동양철학으로 극복한 이야기였다. 원 주간은 “박 전 위원장이 수필을 참 잘 쓴다. 계속 필자로 모시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월간 에세이’의 필자는 창간 이래 줄곧 원 주간이 직접 선정해왔다. 그는 자필 편지를 보내 필자를 섭외하는 방식을 지금껏 고집하고 있다. “필자와는 글로만 소통할 뿐 절대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게 대원칙”이라고 했다.



 ‘월간 에세이’의 누적 적자는 약 60억원. 손실이야 각오했던 바지만, 기업가 출신으로서 마냥 두고 볼 순 없었다. 그는 동양에레베이터를 정리하고, 최근 DY홀딩스라는 투자 기업의 회장으로 있다. 4년 전부터 회사 일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잡지 편집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가 직접 유통까지 챙기면서 영업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 현재 발간 부수는 13만 부에 이른다. 월간 문예지로서는 이례적 수치다.



 “돈을 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을 기부하는 기업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한 문예지 한 권이 한 사람의 영혼을 살찌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원 주간은 요즘도 원고지에 수필을 쓴다. 그가 쓴 수필은 울림이 커서 중학 교과서(‘나의 자화상’)와 고교 교과서(‘큰 바위 얼굴’)에 실리기도 했다. 그가 25주년 기념호 발간에 맞춰 펴낸 에세이집 『돌아올 메아리는 언제나 있고』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월간 에세이가 천년만년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대들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천년만년에 비하면 25년은 찰나다. 그러니까 ‘월간 에세이’는 이제 출발선을 떠난 셈이다. 천년만년 갈 길은 멀었는데, ‘겨우’ 25년 된 이 문예지가 이룩한 성과가 뭉클하다. 우리 수필문학, 아니 한국문학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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