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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인디언 올림픽 첫 금 … 100년 뒤 한풀이 나서는 인디언

매리 킬먼
런던 올림픽 미국 국가대표 매리 킬먼(21·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듀엣)은 100년 전 인디언 스포츠 영웅의 업적을 재현할 수 있을까.



1912년 스톡홀름 2관왕 미국 소프
세미프로 경력 때문에 금 박탈
킬먼, 런던서 여자로 첫 금 노려

 킬먼의 몸에는 포타와토미족 인디언의 피가 흐른다. 미국 행정부에 등록된 포타와토미족은 3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킬먼은 어른들로부터 포타와토미족 어머니를 둔 위대한 인디언 운동선수의 이름을 듣고 자랐다. 그 선수의 이름은 짐 소프다.



 미국 원주민 선수가 출전한 최초의 올림픽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였다. 8년 뒤인 1912년 스톡홀름 대회에서 소프는 인디언 선수로는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육상 5종(멀리뛰기·투창·투원반·200m·1500m)과 10종(멀리뛰기·높이뛰기·장대높이뛰기·투창·투원반·투포환·100m·400m·1500m·110m허들) 두 종목에서였다. 개별 15개 종목 중 8개에서 1위였으며, 10종 기록(8413점)은 이후 2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5세는 시상식에서 소프에게 “귀하는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라고 찬사를 보냈다.



 영광은 비극으로 끝났다. 소프가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세미 프로 야구팀에서 뛴 사실이 이듬해 언론 보도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학비 마련을 위해 푼돈을 받았을 뿐이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14년 소프의 아마추어 자격과 금메달을 박탈했다. 소프는 이후 야구·미식축구·농구에서 프로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금메달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메이저리그 동료였던 치프 마이어스는 “소프가 밤에 찾아와 ‘그들이 내 금메달을 빼앗아갔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소프는 1953년 빈곤과 질병 속에 사망했다. IOC는 30년이 지난 83년 소프를 복권시켰다.



 소프 외에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인디언 선수는 64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빌리 밀스(남자 육상 1만m)밖에 없다. 킬먼은 런던 올림픽에서 미국 원주민 여성 선수론 첫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릴 적 그의 작문 주제 인물이었던 소프가 100년 전 이뤘던 업적이다.



 킬먼은 올해 초 런던 아쿠스틱센터에서 열린 프레올림픽에서 동료 마리야 코롤레바와 짝을 이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프레올림픽에선 7위였지만 두 선수가 짝을 이룬 게 지난해였다는 점에서 메달 가능성은 작지 않다. 후지키 마유 대표팀 코치는 수영팀 최연소 선수인 킬먼에 대해 “이 종목을 위해 태어난 선수”라고 극찬했다.



 킬먼은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포토와토미족의 전통이 자랑스럽다”고 썼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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