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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은 궁금할 거야, 응씨배 맛

한국의 최강자 중 유일하게 응씨배 우승컵을 못 만져본 이세돌 9단(왼쪽)이 전기 우승자 최철한 9단과 24강전 바둑을 검토하며 웃고 있다. 과연 이세돌이 우승해 한국 최강자 전원 우승의 기록을 세울지 궁금하다. 이창호 9단은 ‘박정환 우승’을 점쳤다. [사진 한게임]


박정환(左), 판팅위(右)
4년마다 열리는 바둑올림픽, 응씨배 시즌이 돌아왔다. 제7회 응씨배가 23일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 9시30분) 대만 타이베이의 잉창치바둑기금회 특별대회장에서 시작됐다. 출사표를 던진 한국 기사는 모두 6명. 전기 우승자 최철한 9단과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은 시드를 받아 16강전에 직행했고 1회전(24강전)엔 원성진 9단, 박정환 9단, 김지석 8단이 출전했다. 이 중 김지석 8단이 첫날 탈락해 25일의 16강전엔 5명이 출전한다. 최철한 9단은 중국랭킹 1위 탄샤오 5단과 맞붙는다. 이창호 9단은 쿵제 9단, 이세돌 9단은 본선 최연소인 16세의 판팅위 3단을 만났다. 판팅위는 3주 전 중국 신인왕전에서 우승했다. 24강전에서 천야오예 9단을 격파한 원성진 9단은 구리 9단과 맞선다. 원성진은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구리를 꺾고 우승한 바 있다. 한국의 막내 박정환(19) 9단은 미국 대표를 만나 손쉽게 1회전을 통과한 뒤 박문요 9단과 8강 진출을 다툰다. 일본은 시드를 받은 조치훈 9단 한 사람만 남았다. 미국과 유럽도 1명씩 출전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16강전은 한국 5명, 중국 9명, 일본 1명, 대만 1명(장쉬 9단).

막 오른 바둑 올림픽





 응씨배 우승상금 40만 달러는 1988년 1회 대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윔블던 테니스 우승상금의 두 배가 넘었으나 이후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된다. 본토 출신의 대만 재벌 잉창치(應昌期·1914∼97)는 말년을 온통 바둑에 쏟아 부었던 인물. 당시로는 파격이라 할 응씨배도 그래서 탄생했다. 한데 1회 대회 우승컵은 엉뚱하게(?) 한국 기사인 조훈현 9단이 차지했다. 2회 대회는 서봉수 9단이, 3회 대회는 유창혁 9단이 우승하며 응씨배는 한국의 독무대가 됐다. 잉창치의 의도와는 전혀 달리 한국 바둑은 응씨배라는 공간에서 세계 제패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고, 그 판을 깔아준 이가 바로 잉창치였다. 그 바람에 상금이 더 이상 오르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다.



다른 하나는 잉창치가 1997년 타계하면서 대회 주최가 잉창치바둑기금회로 넘어간 것이다. 잉창치는 생전에 기금을 만들어 대회를 중단할 수 없도록 못질해 뒀지만 바둑에 대한 열의까지 상속할 수는 없었다.



 응씨배는 4회 때 이창호 9단이 우승하며 한국 4인방이 차례로 우승하는 진기록을 달성한다. 그래서 5회 때 이세돌 9단이 우승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중국(창하오 9단)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대회인 6회 때는 최철한 9단이 우승컵을 찾아왔다. 그렇다면 올해는 누가 우승할까. 이창호 9단은 전야제 때 사회자의 질문에 “박정환 9단이 우승, 쿵제 9단이 준우승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1인자 중 유일하게 응씨배를 따내지 못한 이세돌 9단은 “상금은 중요치 않다. 한 판, 한 판 최선을 다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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