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삶의 향기] 미식가는 예술가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사진 찍는 것을 배울 때의 일이다. 『사진촬영기법』 같은 책을 몇 권 샀는데, 그 책들에 쓰인 첫 문장은 똑같았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사진에 대한 이 선언적 개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진 전문가의 사사(?)를 받으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었지만 실력은 좀체 늘지 않았다.



 그렇게 한 2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어느 가을날 해 질 녘 뷰파인더 너머의 세상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찍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의 물체가 아니다. 그 물체가 발하는 빛을 내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바로 그 순간 내 눈앞에서 ‘물체’는 사라졌고, 빛만 가득한 세상이 열렸다. 뷰파인더에서 눈을 뗐을 때, 나는 이 세상이 빛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때에서야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빛을 보고 난 다음의 세상은 그전의 세상과 다르다. 사진이나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 작품을 보는 눈도 바뀐다. 빛을 본 사람의 작품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작품을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각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일은 빛의 예술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리의 예술’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음악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날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낱낱이 분별되어 들리는 지경이 오게 되고, 그때부터 듣게 되는 음악은 그전의 음악과는 달라지게 된다.



 빛 또는 소리가 내 몸의 감각 안으로 들어온 사람의 세상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세상은 다르다. 이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인데, 빛 또는 소리의 세상을 내 몸의 감각 안으로 들여놓은 사람들끼리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또 다른 이 세상에 대해 서로 교감한다. 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각자의 몸이 느낀 감각의 세상을 서로 소통하고 확장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맛도 빛·소리와 다르지 않다. 내 몸의 감각이 이 세상의 모든 맛을 향해 열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맛, 즉 음식을 먹을 때의 느낌 정도를 두고 무슨 ‘선사의 개똥’ 같은 소리인가 할 수도 있겠으나, 몸의 감각이란 것이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집합체이며, 그중에 시각과 청각만 유별나게 세상의 아름다운 비밀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맛이란 후각과 미각 그리고 촉각까지 관여하여야 분별이 가능한, 복잡한 영역의 일이라 그 분별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 시각 또는 청각의 예술만큼 체계화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맛은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라 여기는데, 코가 더 많은 관여를 한다. 맛을 안다는 것은 입과 코로 들어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분별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입에 닿는 음식물의 조직감이나 미뢰에서 느끼는 오미(五味) 이외에 이 세상의 모든 냄새까지를 맛의 영역 안에 넣어야 한다.



 맛을 즐긴다는 의미는 단지 먹을거리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지 어떤지 따지는 일이 아니다. 맛을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맛에 대해 분별을 세우는 일부터 하여야 한다. 빛 또는 소리를 내 몸의 감각 안으로 밀어넣기 위해서 많은 공부와 수련을 하듯 맛에 대한 감각 또한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고유의 맛이 있다. 먹지 않는 것이라 하여도 그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쇠붙이에도 시큼한 맛이 있고 쇳내가 난다. 공기도 맛이 있다. 늦은 봄날 아침에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의 공기는 달콤하고, 가을날 오후 소낙비 내리고 난 다음의 공기는 비리다. 사람들도 그 맛이 다 다르다. 밭일로 흙투성이가 된 할머니의 몸에서 화사한 매화 향기가 나기도 하며, 분칠 곱게 한 도시의 젊음에게서 썩은 닭똥 냄새가 날 때도 있다.



 이 글이 쓰여 있는 신문지에도 맛이 있다. 언론 노동자의 곧은 심기가 활자로 찍혀 있으면 그 맛에 싱싱한 맑음이 있을 것이며, 비열함이 숨어 있으면 쓰고 역겨울 것이다. 결국, 맛에 섬세해진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분별을 바로 세우는 일과 같다. 모두, 미식가가 되기를 바란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글 연재를 마칩니다. 후속 필자는 ‘지리산편지’의 시인 이원규씨 입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