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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그리스인들의 ‘손가락’

정경민
뉴욕 특파원
며칠 전 미국 방송뉴스에 그리스 남부 섬들이 나왔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흰색 건물이 짝을 이룬 산토리니, 그리스 신화가 살아 숨쉬는 크레타, 원시 지중해의 자연을 품은 안드로.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림엽서가 됐다. 그런데 앵커의 멘트가 가관이다. 그리스가 재정위기 탈출 묘안으로 이 섬들을 팔면 어떻겠느냐는 거다. 섬만으론 약간 모자라니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도 외국에 리스를 주라고 비아냥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주도·울릉도 팔고 경복궁·비원은 리스를 주라고 했더라면? 아마 이튿날 IMF 서울사무소는 짱돌과 화염병 세례로 쑥대밭이 됐을 게다. 미국 방송이 그리스를 조롱한 건 지난 6일 총선 직후였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긴축을 받아들이라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배 째라’ 공약을 내세운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제2당으로 약진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수는 “유럽 파트너들이 지원을 끊으면 우리도 빚 못 갚는다”며 배를 들이밀었다.



 어쩌면 자존심 구긴 그리스 국민들의 속이 잠시나마 후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프라스에게선 답을 찾기 어렵다. 설사 독일·프랑스가 그의 벼랑 끝 전술에 굴복한들 오후 2시 반만 되면 ‘땡’ 하고 짐 싸는 공무원이 취업자의 3분의 1인 체질을 바꾸지 않고 경제 회복이 가능할까. 오히려 모르핀만 늘려 암 덩어리를 키우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유로존을 탈퇴해 ‘드라크마’라는 옛 통화를 다시 쓰는 건 어떨까. 곧바로 드라크마 가치는 곤두박질할 게다. 우리도 외환위기 때 달러당 2000원 환율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덕에 수출은 급증하고 수입은 급감해 1998년 500억 달러 무역흑자를 냈다. 그 돈으로 빚 갚고 ‘IMF 신탁통치’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리스는 농업국가다. 드라크마 가치를 아무리 낮춰봐야 딱히 수출할 게 없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긴 하겠지만 경제 위기를 넘기엔 역부족이다. 도리어 수입물가 폭등으로 서민생활만 파탄날 게 뻔하다.



 그리스 국민들은 먼저 자기 손가락부터 분질러야 한다. 81년 이후 복지 포퓰리즘과 부정·부패로 나라를 결딴낸 장본인인 안드레아스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부자(父子)를 총리로 뽑아준 건 독일도 프랑스도 아닌 그리스 유권자 자신들이다. 시리자를 약진시켜 국제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장본인 역시 그리스 유권자다.



 그리스는 우리에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고통받는 서민의 아픔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공약에 표를 주면 어떻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나마 10년 전 예방주사 덕에 우린 좀 낫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제주도 해적기지’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는 데 앞장섰던 야당이 지난 총선에서 패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연말 대선에서도 우리 유권자들이 그 총기만은 잃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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