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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답이 없는 ‘재건축학개론’

서울 강남구 개포지구의 주공 4단지에서 가장 작은 공급면적 36㎡형. 30년 전인 1982년 지어졌다. 이 아파트는 97년 재건축을 시작해 2003년 추진위 승인까지 받았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때의 규제에 가로막힌 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초 6억7000만원대까지 오른 시세는 현재 5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15년 재건축 추진 동안 한 발짝 정도밖에 나가지 못한 이유가 뭘까.



개포 4단지 36㎡형(옛 11평형)이 작은 집 넓히는 데 15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시영재건축추진위원회 사무실. 추진위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재건축하면 어떤 크기의 아파트를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서울시 심의에서 세 번이나 퇴짜를 맞은 소형주택(전용면적 60㎡ 이하) 비율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추진위는 이를 바탕으로 재건축사업 계획 변경 제안서를 시에 다시 올릴 계획이다. 추진위 이승희 위원장은 “정부나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벌써 사업계획만 몇 차례 바꾸는 건지 모른다”며 “재건축을 추진한 지 15년이나 걸렸는데 사업은 여전히 제자리”라고 한숨지었다. 인근 개포주공4단지 분위기도 좋지 않다. 이 단지의 장덕환 추진위원장은 “서울시의 요구대로 소형 비율을 30% 이상 늘리면 작은 아파트를 배정받는 조합원이 너무 많아 우린 사업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시내에서 사업이 진행 중인 493개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가운데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은 곳은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12곳에 불과하다. 2008년(73곳), 2009년(28곳)에 비해 급감한 것이다.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곳도 지난해부터 크게 줄었다. 2010년까지 매년 50곳 이상 인가를 받았으나 지난해에는 11곳으로 감소했다.



 재개발 교육전문기업 예스하우스 전영진 사장은 “재건축·재개발과 관련한 일을 10년 이상 해오면서 요즘처럼 사업이 침체된 경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우선 주택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매수세가 크게 줄어든 때문이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에 따르면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이달까지 평균 17% 떨어졌다. 개별 단지별로 30% 이상 급락한 곳도 꽤 된다. 개포주공4단지 전용면적 50㎡형은 2009년 말 대비 28% 빠진 7억8000만원 수준이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떨어지면서 해당 지역 재건축 사업성은 악화된다. 재건축한 이후 분양가를 비싸게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집값이 떨어지면 투자 수요가 많은 재건축 단지의 시세는 더 곤두박질친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 주택 공급이 줄어 수급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5~2011년 서울 전체 주택공급량의 50%가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공급됐다. 연평균 2만9000가구 규모다. 게다가 낡은 주택·아파트를 제때 개발하지 않으면 붕괴 위험, 슬럼화 등 각종 사회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은 엇박자로, 시장만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4년간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폐지, 소형주택 및 임대주택 의무비율 완화, 초과이익 부담금 2년간 부과 금지, 조합원 사업지구 내 2주택 소유 허용 등의 대책을 쏟아냈다. 지난해 말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대한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했고, 최근 투기지역마저 풀어 대출과 거래를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기보다 유지 개량을 중심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강남 개포주공, 개포시영, 홍실, 반포 한양 등의 재건축 계획 심의를 줄줄이 보류했다. 소형주택을 늘리고 층수를 낮추는 조건에서다.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추진위원회 박용국 사무국장은 “정부 대책과 사업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의 방향이 어긋나 어디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다”며 “혹시나 또 새로운 대책이 나올까 하는 기대에 사업 추진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발표한 5·10 대책을 통해 1대 1 재건축 기준을 완화하고 기반시설 설치비를 지원하는 등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대책이 나오기 하루 전인 9일 ‘저가 고품질 임대주택’을 8만 가구로 확대해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내용이다. 가락시영 손규만 사무국장은 “임대주택을 많이 지으면 조합원들의 부담금이 늘어나고 일반 분양가도 높아져 분양이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서울시가 이 사업이 잘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서울지역 아파트의 70%가 재건축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새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방법으로 재건축·재개발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지역별로 용적률을 높여줄 곳은 과감히 높여주고 기반시설 부담도 줄여주는 등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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