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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나는 옷 매무새를 바로잡느라 거울을 본다. 아침 출근시간에는 늘 허둥지둥한다. 집에서 대충 맨 넥타이의 모양을 고쳐보다가 역시 거울을 보던 여중생과 잠깐 눈이 마주친다. 여중생은 치마 허리춤을 탁탁 솜씨 좋게 두 번이나 접어 말아올린다. 능숙한 손놀림이다. 그 모습을 보니까 지난 4월 총선 때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유명 인사들이 걸었던 공약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대개 ‘만일 투표율이 70%를 넘으면’이란 조건을 달고 한 공약이었는데 몇 가지 패턴이 있었다.

우선 가수의 코스프레를 하거나 춤을 추고 노래하겠다는 공약이 가장 많았다. 작가 공지영은 아이유 코스프레를, 시사평론가 진중권과 정치인 노회찬은 엘비스 프레슬리 코스프레를 약속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후드티를 입고 티아라의 ‘롤리폴리’ 춤을, 강금실 전 장관은 이효리의 ‘텐미닛’ 춤을 추겠다고 했다. 안철수 교수는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하겠다며 투표를 독려했다.

다음으로 머리 모양을 바꾸겠다는 공약이 많았다. 작가 이외수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장발을 버리고 스포츠 머리를 하겠다고 했다. 정치인 정동영은 꽁지머리에 빨간 염색을, 정세균은 노란 염색을 하겠다고 했다.
옷을 벗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개그맨 김제동은 상의를 탈의하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태백산 정상에서 팬티만 입고 인증샷을 날리겠다고 공언했다. 우연이겠지만 두 사람은 투표율 조건을 65%로 낮췄다.

스타킹을 착용하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조국 교수는 투표율 70%라는 조건 대신 ‘진보개혁 진영이 의회 다수당이 되면’이란 조건을 걸고 망사스타킹을 신겠다고 했다.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인 노회찬은 망사스타킹을 얼굴에 뒤집어 쓰겠다고 했다.

앞의 공약들이 대부분 자신의 변화에 관한 것이라면 관계의 변화를 모색하는 공약도 있었다.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은 주진우 기자와 딥키스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분들의 충정을 믿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우호적이거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향하게끔 하려는 간절한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은 그런 변신을 공약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그분들에겐 그런 일탈과 변신의 욕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꼭 그런 거대한 조건을 내걸지 않고 그냥 한번쯤 일탈과 변신을 시도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여중생은 치마 길이를 조절하는 중이다. 내 눈에는 그게 그것 같은데 그 섬세한 차이 때문에 계속 접었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몇 번 시행착오를 거듭하자 마침내 어중간하던 길이의 교복 치마가 예쁜 미니스커트로 바뀐다. 이제야 마음에 드는지 여중생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환한 봄 아침 속으로 통, 통 달려나간다.

그러니까 나는 상상해 본다. 그 유명인사들이 내걸었던 공약대로 머리 모양을 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코스프레를 하고 망사스타킹을 착용하고 딥키스를 하는 광경을. 나는 투표율이 70%를 넘는 사회보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시도해 보는 사회가 훨씬 더 즐거운 사회일 거라고 믿는다.
나는 넥타이를 다잡아 매고 구두 끈을 바짝 당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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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