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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번째 시장, 왕세자부부도 놀라"

매즈 라이더 로얄코펜하겐 CEO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우리가 237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늘 실용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순백의 도자기 위에 코발트빛 문양.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그릇계의 샤넬’로 불린다. 237년 역사를 간직한 로얄코펜하겐의 대표적 작품을 둘러볼 수 있는 자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련됐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로얄코펜하겐-덴마크 헤리티지, 그 이상을 만나다’(5월 20일까지)다. 전시는 한 특정 기업의 제품이 아니라 한 국가의 문화 유산을 소개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여수엑스포를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프레데릭 크리스티안 덴마크 왕세자 부부는 15일 이곳을 찾아 직접 핸드 페인팅을 시연했다. ‘국가 대표 자기’에 대한 왕실의 애정과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곳에서 매즈 라이더(49) 로얄코펜하겐 최고경영자(CEO)을 만났다. 그는 “명품 그릇을 만드는 목표는 분명하다. 대를 이어 50년, 100년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자랑스럽게 쓰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데릭 덴마크 왕세자와 메리 왕세자비가 로얄 코펜하겐 접시에 직접 붓으로 문양을 그린 뒤 즐거워하고 있다.
●‘명품 식기’로 명성이 높다. 그릇에 ‘명품’이라니.

 “샤넬 같은 명품은 이제 많이 흔해지지 않았나. 서울 거리만 해도 루이뷔통 백이나 프라다 신발을 많이 볼 수 있더라. 우리 명성이 높다면 ‘진정한 품질(real quality)’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점, 230년이 넘는 긴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점이 매력인 거다.”

●품질을 위해 지키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나.

 “237년 전에 만든 그릇과 오늘 만든 그릇의 품질이 같아야 한다. 증조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더라도 아무 문제없이 쓸 수 있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품질이다.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면 미련 없이 버린다. 그래서 A급 제품들은 정말 흠잡을 데가 없다. B급도 일부 있지만 A급과는 철저히 구분해 판매한다. 제조 원칙은 ‘핸드메이드’다. ‘블루 플루티드’ 접시 하나를 그리는 데 붓질을 1197번이나 해야 한다. 현재 90%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10% 정도만 다른 업체에 외주를 줘 생산하고 있다. 그중 한 곳이 ‘한국도자기’다.”

●명품 그릇을 맘 놓고 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오, 제발. 나는 우리 제품이 식탁이 아니라 (소장 목적으로) 선반이나 찬장에 올려지는 걸 정말 원치 않는다. 사람들이 매일매일 우리 그릇들을 사용했으면 좋겠다. 비싼데 깨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컵이든 접시든 실수로 깨뜨렸을 때 조각을 가져오면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준다. 이게 바로 ‘파손 보증’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된다. (직접 접시를 오른쪽에서 왼손으로 가볍게 날려 잡으며) 그릇을 편안하게 생각하면 떨어뜨리지 않는다. 너무 조심스러워하면 떨어뜨리는 거다. 그냥 거칠게 다루면서 우리 그릇에 적응했으면 좋겠다(웃음).”

 18세기 유럽에서 도자기는 ‘하얀 금’이라고 불릴 만큼 귀했다. 유럽에도 자기가 있었지만 질그릇 수준이었다. 귀족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아시아의 희고 매끈한 도자기에 열광했고, 도자기 생산 여부가 그 나라의 힘과 문화·기술 수준을 결정했다. 1775년 덴마크의 줄리안 마리 왕비가 만든 왕립자기공장의 장인들은 수준 높은 도자기들을 생산해 냈다. 영국의 넬슨 제독은 덴마크에 머물면서 도자기를 사 모았는데 금액으로 치면 1년에 16명의 하녀를 고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로얄코펜하겐은 1868년에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왕실에서 로얄코펜하겐이란 브랜드와 특허를 갖고 있다.

●회사가 덴마크의 문화유산으로 대우받는데.

 “단적으로 국보인 ‘플로라 대니카(Flora Danica)’를 만들었다. 1802개의 식기 위에 덴마크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은 거다. 무려 12년이 걸렸다. 원래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에게 보낼 선물용이었는데 완성되기 전에 여제가 죽어버려 그냥 덴마크에 두기로 했다.”

①년에 몇 점이나 생산하나.

 “210만 개 정도 만든다. 2011년에 생산한 모든 그릇을 쌓아 올리면 21㎞에 이른다.”

●유럽시장이 경제위기로 어려운데 실적은 어떤가.

 “2008년과 2009년은 글로벌 적자가 났다. 하지만 2010년 회복세로 돌아서 지난해 매출 4억9000만 크로네(약 977억원), 세전 이익 6200만 크로네(약 124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11% 성장한 거다.”

●한국에선 어떤가.

 “한국에선 더 좋다. 지난해 20% 이상 성장했다. 이제 한국은 덴마크·일본에 이어 로얄코펜하겐에서 셋째로 큰 시장이 됐다. 왕세자 부부도 아주 놀라워하더라. 한국 시장은 늘 중요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해졌다.”

●그 정도면 특별대우를 해줘야겠다.

 “그래서 내년 초에 한국 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그릇들이 한국에서 더 자주 쓰이려면 한국 식탁에 맞는 밥그릇·국그릇·김치그릇·반찬그릇이어야 한다. ‘제대로 된 한국 그릇’을 내놓고 싶다.”

●한국 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나.

 “경기 둔화로 거의 모든 나라의 백화점과 소매점이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백화점이 번창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주로 선물용으로 사는데 한국 소비자들은 수집가도 많은 것 같다. 특히 젊은 싱글족과 젊은 부부들 중엔 그릇 하나라도 ‘제대로 된 물건’을 구입하는 데 돈을 쓰려는 사람이 많다. 구매력이 상당하다.”

●한국은 도자기 역사가 수천 년이다.

 “잘 알고 있다. 1997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경기도 이천 도자기 공장들을 둘러보고 감탄했다. ‘광주요’ 자기를 한 점 사 왔는데 아직도 집에 있다. 지금 한국에선 자기가 인기 있는 것 같다. 도자기는 아시아가 원조 아닌가. 사실 한국에 도자기를 팔러 오는 게 좀 이상한 거다(웃음).”

●로얄코펜하겐도 역사가 긴데 자칫 과거에만 얽매일 위험은 없겠나.

 “그래서 ‘나아갈 방향’이 중요한 거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제품들을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그게 ‘클래식(classic)’이다. 50년, 100년이 됐지만 오늘날에도 통할 제품라인을 유지하고, 또 계속 진화시켜 나가는 거다. 이 점에서 로얄코펜하겐과 한국의 문화는 아주 잘 어울린다.”

●왜 그런가.

 “서울에 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이 역사와 전통, 현대가 잘 섞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첨단 LED 전광판에서 최신 기술을 자랑하는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을 광고하는데 그걸 보면서 걷다 보면 갑자기 조선시대 궁궐이 나온다. 그리고 수많은 전통 식당을 지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다. 여기 오기 전에 주덴마크 한국대사를 만나 관광 가이드북을 얻었는데 다른 나라 것과 완전히 달랐다. 기본적으로 역사와 유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키면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로얄코펜하겐의 대표적인 팬들을 소개한다면.

 “영국 여왕께서 우리 그릇을 좋아한다. 또 엘턴 존, 오프라 윈프리도 큰 고객이다. 디자인 하우스 프라다도 우리 제품 라인을 많이 구매한다. 부유한 아랍인이나 러시아인들은 한 번에 200만 크로네(약 3억9860만원)어치를 사 가기도 한다. 한국에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인희 한솔 고문이 쓰신다고 들었다.”

 라이더 대표는 2009년 로얄코펜하겐에 오기 전 덴마크의 대표기업인 레고(LEGO)그룹에서 일했다. 15년 전엔 ‘레고랜드’를 만들 장소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레고에서 이직한 이유는.

 “두 회사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가족기업이고, 회사를 숲처럼 운영하다. 나무 한 그루를 자르면 그 자리에 두 그루를 심듯 우리 후세들에게 뭔가 남겨주려 한다. 나는 그런 생각들이 좋다. 기업이니까 이익 창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회사의 장기적인 수명과 이윤 사이의 균형을 찾고 싶다. 무엇보다 품질에서 레고도 50년 전 제품을 꺼내 다시 가지고 놀 수 있다. 다시 꺼내 봐도 현대적이고 시대에 맞는다. 휴대전화나 컴퓨터·카메라는 10년만 지나도 구식이 돼 버린다. 하지만 레고나 로얄코펜하겐 제품은 무엇 하나만 추가하면 항상 사용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문득 그의 왼쪽 손목에 걸린 노란 팔찌가 눈에 띄었다. 매년 ‘랜스 암스트롱 암 퇴치 재단’에 기부하고 있는데 거기서 받은 팔찌라고 했다.

●사회봉사에 관심이 많나 보다.

 “개인적인 얘긴데…5년 전에 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엔 믿을 수 없었다. 너무 건강했고, 살도 좀 빠져서 멋져 보였으니까(웃음). 그 후로 치료를 받고 지금은 다 나았다. 내가 암이란 질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팔찌를 늘 하고 다닌다. 사람은 위기를 벗어나면 금세 다 잊고 과거로 돌아가고 만다. 하지만 비록 제품을 많이 못 팔더라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호텔 로비에 가 보면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물론 일도 중요하지만 삶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로얄코펜하겐=1775년 덴마크 왕실 도자기 업체로 출발했다. 야생식물의 그림이 은은하게 그려진 ‘플로라 대니카’ 라인은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흰 바탕에 푸른 문양이 그려진 ‘블루 플루티드’가 대표 라인으로 유명하다. 세계 30여 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94년에 한국 법인이 설립돼 서울과 지방에 모두 14개 매장이 있다. 흔히 영국 웨지우드, 독일 마이센과 더불어 세계 3대 명품 자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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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