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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정이현·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사랑의 기초’

사랑이란 말은 장악되지 않는다. 정이현(40)과 알랭 드 보통(43)이 사랑을 주제로 소설을 쓰겠노라 했을 때, 살짝 염려됐다.

장악되지 않는 사랑을 어찌 소설로 풀어낼까. 두 작가는 2년 남짓 e-메일을 주고 받으며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사랑의 기초’라는 제목 아래 『연인들』(정이현)과 『한 남자』(알랭 드 보통)가 탄생했다.

정이현은 서울의 연애 이야기를, 보통은 런던의 결혼 이야기를 담았다. 각각 연애학개론, 결혼학개론이라 해도 무방할 테다.

만남·절정·이별 … 정이현이 그린 연애의 세밀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랑의 기초
연인들
정이현 지음, 톨
212쪽, 1만1000원


연애는 포물선이다. 남자의 포물선이 여자의 포물선과 만나는 접점에서 연애가 꽃핀다. 포물선이란 시작→정점→추락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현상이다. 연애가 포물선이라면, 처음과 절정과 끝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정이현의 세 번째 장편 『사랑의 기초-연인들』은 그 포물선의 궤적을 더듬는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에서 추락하는 이야기다.

 소설이 택한 남녀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 남자의 이력은 이렇다. 이름 이준호. 30세. 서울의 중위권 대학 경영학과 졸업. 웹에이전시 근무. 그 여자의 이력도 고만고만하다. 이름 박민아. 28세. 의류회사 근무. 공무원 부모님으로부터 결혼 압박을 받고 있음.

 말하자면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다음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애를 끌고가는지 관찰한다. 준호와 민아의 사랑은, 2012년 대한민국의 가장 보통의 연애다.

 “알랭 드 보통과 사랑이란 주제로 함께 소설을 쓰기로 했을 때 문득 201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후반의 남녀가 떠올랐어요. 사회경제적인 조건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만 그들도 연애를 할 텐데, 무엇이 그들을 연애하게 할까. 20~30대의 사랑을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탐구해본 소설입니다.”

 소설에서는 지금 한국의 청춘이 빚어내는 연애 풍경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20대들이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연애”의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작가는 “직업·학력 등이 다양한 20~30대 남녀들을 자주 만났다”고 했다. 이를테면 준호와 민아의 연애는 다음과 같은 ‘보편적인’ 단계로 진행된다.

 ①만남 준호도 민아도 연애가 처음은 아니다. 서너 차례 연애 경험이 있다. 그러니 소개팅이 낯선 것도 아니리라. 그런데 묘하다. 자꾸만 서로의 닮은 점이 들어온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저는 모던록이 좋아요.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이발관 같은.”(민아) “어, 언니네이발관 저도 좋아해요. 특히 2집”(준호) 연애의 시작은 대개 이러하다. 서로가 얼마나 닮았는지 케케묵은 것까지 맞춰가며 신기해 한다.

 ②절정 연애 감정이 달아오른 서울의 남녀는 딱히 갈 데가 없다. 그래서 시내 곳곳의 모텔을 전전한다. 작가는 한낱 숙박업소에 의존해 사랑을 나누는 이 도시의 남녀를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를테면 준호와 민아는 북한산 등반을 하기로 한 날, 등반로 입구에서 등반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등산로 인근의 낡은 모텔로 스며들어가던 여름 한낮, 그들은 행복의 절정에 있었는지 모른다.’(130쪽)

 ③이별 연애는 열애로 번졌다가 이별로 마무리된다. 민아는 준호의 불안한 사회경제적 지위 탓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다 불쑥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1년 뒤, 둘의 사랑은 자연스레 소멸된다. “안녕”(준호) “응, 안녕”(민아) 사랑은 그렇게 주저앉고 말았다. 작가는 이 장면을 “완벽한 착륙”이라고 했다.

 “완벽한 연애란 완벽한 이별로 마무리됩니다. 이별이 없다면 연애의 서사는 끝날 수 없는 것이죠.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 방어적인 경향이 커요.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상처를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연애를 끝내죠.”

 작가는 “첫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아닌 서너 번째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서사의 기승전결이 완결된 연애 말이다. 그 연애란 아마도 하고픈 말을 삼켜버린 말줄임표처럼 달콤한 침묵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두 개의 포물선이 스쳤던 게 비록 찰나였다 하더라도 그 한 순간이 기적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러니 연애란 어쩌면 물리학의 문제다. 달뜬 사랑이 포물선을 그리다 착륙할 때 연애가 완성된다. 이상 정이현의 ‘연애학개론’ 끝.


갈등·권태·욕망 … 보통이 그린 결혼의 정물화

[박종근 기자]

사랑의 기초
한 남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톨
192쪽, 1만1000원


주의사항 하나. 결혼을 궁극의 낭만이라 여긴다면, 이 책을 조심스레 펼칠 것. 스위스 출신 작가 알랭 드 보통이 17년 만에 발표한 『사랑의 기초-한 남자』는 당신에게 결혼의 ‘생얼’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서둘러 덮진 마시라. 소설의 맨 마지막에 결혼 생활에 임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 하나를 깨치게 될 테니까.

 소설은 연애가 결혼으로 이행된 뒤의 이야기다. 정이현의 『연인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결혼에 이른다면, 아마도 『한 남자』에 나오는 부부마냥 살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런던의 평범한 부부를 택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을 품었다. “낭만적 사랑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랑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소설의 주인공 벤과 엘로이즈도 한때는 뜨거운 연인이었다. 그런데 결혼이란 일상이 그들의 낭만적 사랑을 앗아갔다. 둘은 현재 두 아이의 부모로 런던 북부에 살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이 부부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보통에게 e-메일을 보내 벤과 엘로이지의 변질된 사랑, 혹은 고착된 결혼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사랑과 인간관계를 탐구한 독특한 연애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993)로 이미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훔친 적이 있다. 『한 남자』는 그에 비해 사회학적 탐구가 짙게 묻어나는 소설이다. 보통은 “결혼생활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남자의 생각을 탐구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은 연애의 반대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남편 벤은 아내 엘로이즈에게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데, 그런 자신에게 당혹감을 느낀다. 이를테면 연애 시절의 벤은 조신한 성품의 엘로이즈에 매력을 느꼈지만, 결혼한 벤은 매사에 침착한 엘로이즈를 견딜 수 없다. 연애 때 엘로이즈의 젖가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던 벤은 이제 엘로이즈가 “가슴을 드러낸 채” 누워있는 걸 보고도 심드렁하다. 뿐만 아니다. 둘은 몹시 사소한 문제로 자주 심각하게 다툰다. 어찌된 영문일까. 결혼이 대체 뭐기에.

 소설에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보통 특유의 잠언록이 여럿 나온다. 예컨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고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실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깨닫는 순간, 그 사랑은 최대의 시련과 맞닥뜨린다.’(19쪽) 같은 대목들.

 -결혼과 연애는 별개의 관계인가.

 “전혀 다르다. 모든 결혼에는 갈등·권태·욕망·다정함이 있다. 데이트는 없고 헌신은 절대적인 게 된다. 나는 결혼 비관론자가 아니지만, 결혼 생활이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벤은 몹시 다중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윤리적이면서도 일탈을 탐하고(그는 딱 한 번 바람을 피운다), 죄의식에 오래 시달린다. 작가는 “현대의 결혼은 섹스·사랑·가족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139쪽)고 적었다.

 -벤은 어떤 인물인가.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남자다. 침실에서 일터에서 인생사에 대해 고심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보편적이고 진실하다.”

 이 소설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벤은 생일 기념으로 가족들과 헬기를 탄다. 위태롭고 짜릿한 비행에서 벤은 아내와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평범한 삶을 지켜내는 극적인 운명으로서의 결혼을 깨닫는다. 보통은 “결혼 생활을 잘 꾸리기 위해 사랑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기술이란, 다만 결혼이라는 일상을 그럭저럭 유지해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보통의 ‘결혼학개론’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결혼이란 지긋지긋하게 아름다운 일상이다.

사랑이란…

정이현


“사랑이란 말줄임표가 아닐까
생각해요. 뭐라고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말이 잠시 끊겼던 침묵 같은 것이

사랑 아닐까요.”

알랭 드 보통

“사랑을 위한 문장부호를 꼽으라면
저는 하이픈이라고 답하겠어요.
두 사람을 연결하여 나라는 존재를
‘나-나’로 만들어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결혼이란…

정이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특정 연령에
특정 상황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결혼에 이르게 되는 거겠죠.
사람들은 그걸 운명이라고 여기는 거구요.”

알랭 드 보통

“결혼과 연애는 전혀 별개라고 생각해요.
일단 결혼을 선택하고 나면 모든 게
심각해지죠. 고통도 기쁨도 결혼 전보다
훨씬 강렬해집니다.”


남녀의 차이

알랭 드 보통


“남녀가 서로에게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 사이에는
항상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정이현

“분명한 것은, 남녀가 사랑에 빠질 때는
다양한 종류의 기대감이 작동하지만,
그 기대가 결코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죠.”


서로의 작품에 대해

알랭 드 보통


“『연인들』은 연애의 초라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사소한 디테일의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정이현

“『한 남자』를 읽으며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남녀가 느낄 법한 여러 가지 감정과
상황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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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