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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IT 융합의 시대, 분리를 생각한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투쟁 과정이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한 말이다. 하지만 요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역사는 융합과 분리의 투쟁 과정인 것 같다. 어딜 가나 융합 얘기다. 정보기술(IT)융합부터 신기술융합·산업융합·문화융합에 이르기까지 융합의 대상은 끝이 없다. 융합은 분명 한국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융합이 이렇게 중요해진 만큼 융합이 가져올 치명적 위험, 즉 시스템 위험도 함께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에서 IT산업은 그야말로 핵심산업이다. 수출 비중은 30%를 조금 밑돈다. 한국거래소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25%를 넘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600조원을 넘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0%나 된다. 한국에서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비중이 17%에 달한다. 골드먼삭스나 씨티은행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금융사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사”라고 부른다. 빗대어 표현하면 IT산업은 한국경제에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다.

 이토록 잘나가는 IT산업에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최근 IT산업의 발전 과정을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금융산업을 쏙 빼닮았다. 융합으로 치닫고 있는 점이 그렇다. 먼저 금융산업을 보자. 1933년 대공황을 일으킨 주범으로 금융의 융합이 지적되면서 ‘분리의 시대’가 시작됐다. 은행은 은행대로, 증권사는 증권사대로 각기 자기 영역에서만 경쟁하고 발전했다. 금융산업에 융합의 시대가 온 것은 1999년 미국에서 ‘금융현대화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역사적으로 ‘현대화’란 용어는 금융에선 줄곧 ‘융합’을 의미했다. 칸막이가 사라졌고 금융은 융합에 융합을 거듭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2010년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융합의 시대는 저물고 다시 금융업무가 강제적으로 분리됐다.

 IT산업은 어떠한가. 애플의 아이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분리의 시대였다. 분리된 영역에 서로 다른 강자가 있었다.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 프로세서는 인텔, 휴대전화는 노키아, 게임기는 닌텐도가 분리시대의 대표적 기업이었다. 융합의 시대가 온 것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스마트폰이 스마트 자동차로, 스마트 오피스로, 스마트 병원으로 확대·융합하고 있다.

 IT산업에서 시스템 위험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분야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말 그대로 구름같이 가상화된 컴퓨터 환경이다. 더 이상 개개인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를 저장할 필요 없이 정보와 소프트웨어가 집중된 클라우드 컴퓨터에 접속만 하면 된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지난번 금융위기 때 문제가 되었던 ‘명목상의 특수목적회사(SPV)’를 생각나게 한다. 구름같이 가상화된 실체라는 점이 유사하다.

 금융위기 전 은행은 대출자산을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은행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규제도 받아야 하고 기회비용도 발생한다. 그래서 별도로 명목상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떼어낸 자산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바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때 문제가 된 금융상품이다. 전통적인 IT 환경하에선 각자 PC에 자신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보관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PC에서 떼어낸 데이터를 클라우드 컴퓨터에 보관한다. 비용이 적게 들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집중돼 있으면 위험도 커진다. 정보 트래픽 급증이나 해킹, 더 나아가 정보조작이 발생하면 접속한 모든 주체가 동시에 피해를 보게 된다. 바로 시스템 위험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땐 한국이 충격을 잘 피했다. 금융이 극도로 융합돼 있던 미국과 사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IT산업에서 시스템 위기가 발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터넷으로, 스마트폰으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가장 잘 연결되고 융합된 국가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융합의 시대, 분리를 같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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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