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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들의 글씨 연구·모방 거쳐 자신의 독창적 글씨체 완성

‘그림 그리는 법은 장강 만리와 같은 유장함이 있고, 글씨 쓰는 법은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다’(화법유장강만리 서예여고송일지) 예산 용궁리에 있는 추사고택 사랑채에 있는 주련이 시선을 끈다. 주련(柱聯)은 기둥이나 벽에 장식 삼아 써 붙이는 글씨. [사진=이영관 교수]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순으로 소개한다.

추사(秋史) 김정희는 1786년 충남 예산의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34세 때인 1819년 과거시험 대과에 합격해 출세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조선의 북학을 집대성했고 추사체를 완성했다.
『완당평전』에서 유홍준은 추사체를 ‘괴(怪)하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괴’에는 김정희의 독창성과 긴 유배생활에서 터득한 심오한 인생관이 함축돼 있다.

9년간의 제주 유배생활 전에는 김정희의 글씨에는 여유와 풍요로움이 넘쳐 흘렀는데, 유배생활 후의 추사체는 간결한 멋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만의 독특한 필치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추사에 미치다』에서 이상국이 추사체의 ‘괴’함을 묘사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요컨대 추사체가 ‘괴’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정희가 했던 실험들이 새로움을 넘어서서 심원한 미학에 도달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혹자는 추사체가 아름답지 못한 글씨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얼마나 창조적으로 접근했느냐 보다 기존의 훌륭한 문체를 원형에 가깝게 모방했느냐를 가지고 우수함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과거 지향적인 가치관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농경민족의 후예이기에 겪는 현상일 수도 있다. 유목민들은 양이나 소를 키우다가 가축의 먹이가 떨어지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거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농경민족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소극적이고,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관행처럼 받아들여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스승이나 대가를 뛰어넘는 행위 자체가 자칫 잘못하면 불경한 행위로 간주되기 십상이었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많은 영역에서 세계화됐 음에도 창의적인 선구자들을 위험한 인물로 보는 경향이 곳곳에 남아있다. 하물며 조선후기의 폐쇄적인 사회에서 기존의 필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필체를 정립하려 했던 추사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모방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지만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학창시절에는 천재였는데 사회에서는 그저 평범한 인재의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많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 대가들의 작품을 원형에 가깝게 모방하면서 큰 성취를 이룩했다고 스스로 도취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될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추사체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 모방을 거부한 채 완전하게 상상 속에서 독창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기존 대가들의 글자체를 연구하고 모방해가면서 점차로 자신의 독창적인 추사체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처럼 모방에서 출발해 점차로 창조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경영학에서는 ‘벤치마킹(benchmarking)’이라 부른다. 벤치마킹이 성공하려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따른다. 모방에서 출발해 모방으로 끝나면 벤치마킹이 효과적이지 못하다. 모방에서 출발했지만 추사체가 완성된 것처럼 결국에는 창조가 이루어져야만 벤치마킹은 그 본래의 취지대로 큰 성과를 이룰 수 있게 된다. 특히 현대사회는 정보화, 개방화로 인해 경영에 필요한 정보들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경우 창조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해결책을 도출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뛰어난 해법을 찾아내고도 경쟁자에게 뒤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벤치마킹을 통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발 빠르게 해결하는 리더들이 경제적이면서도 시의 적절하게 좋은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영관 교수
이영관 교수

196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조선견문록』『한국의 아름다운 마을』등이 있다.

글= 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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