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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민병도의 남이섬, 민병갈의 천리포

손민호 기자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 우리나라 수목원의 산 역사와 같은 수목원이다. 그 나무 낙원을 만든 주인공이 민병갈(1921~2002) 선생이다. 귀화 미국인 민병갈이 나무와 함께한 삶은 이번 주 커버스토리에서 소개했듯이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러나 천리포수목원과 남이섬의 인연은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 천리포수목원과 남이섬은 말하자면 형제 사이다.

남이섬과 천리포수목원의 인연은 평생 나무를 사랑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다. 남이섬 초대 회장 민병도(1916∼2006)와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반세기에 걸친 두 남자의 우정이다.

두 남자의 인연은 1947년 시작됐다. 민병갈 선생이 미 군정청 재정담당관 시절 당시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민병도 회장을 만났다. 두 남자는 이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민병도 회장이 민병갈 선생보다 다섯 살 많아 형이었지만 먼저 나무를 심은 사람은 동생 민병갈이었다. 민병갈 선생이 1962년 천리포에 터를 닦자 민병도 회장도 3년 뒤 한국은행 총재직을 사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등을 모아 남이섬에 들어갔다.

그 뒤로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았다. 동생이 형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뜰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경쟁하며 나무를 심고 키웠다. 민병도 회장은 1979년부터 97년까지 천리포수목원 이사로 참여했고, 민병갈 선생은 수목원에서 키우던 묘목을 남이섬에 여러 차례 전해 주었다.

두 남자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 민병갈 선생의 이름이다. 민병갈 선생의 원래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였다.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는 79년 천리포수목원을 개장하면서 한국인 민병갈로 개명했다. 칼 페리스 밀러는 형님의 성(姓) ‘민(閔)’과 자신의 성 밀러(Miller)의 첫 발음이 같다는 걸 발견하고 성씨를 따랐다. 형님의 성은 물론이고 본관 ‘여흥’도 따랐다. 돌림자로 쓰이는 이름 ‘병(丙)’ 자도 자신의 한국 이름에 썼다. 이름 맨 마지막에는 ‘목마를 갈(渴)’ 자를 붙였다. 그의 원래 이름 칼(Carl)의 소리를 딴 것이었다. 이로써 민병갈이라는 이름이 완성됐다. 민병갈 선생은 이후 여흥 민씨 명예회원 자격으로 문중 원로를 수목원으로 초청해 종친회를 베풀기도 했다.

지난 2월. 남이섬과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선생 10주기를 맞아 형제 확인서를 교환했다. 동생 민병갈이 먼저 가면서 끊겼던 형제의 연이 이제야 다시 맺어졌다. 남이섬과 천리포수목원은 30년 전 두 의형제가 그랬듯이 다시 동기간이 됐다.

나무를 제 몸처럼 아꼈던 두 남자는 영영 나무 곁으로 돌아갔다. 하나 그들이 심었던 나무는 그들이 심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아니다. 두 남자의 나무는 어느새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어 새끼를 쳤다. 남이섬과 천리포수목원의 수십만 그루 나무에는 아직도 두 남자의 숨결이 배어 있다. 나무만큼 푸른 우정 이야기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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