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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걸·옐로버즈·우즈맨…일년내내 목련 세상

지난 15일 콴잔벚나무 꽃잎이꽃분홍 융단처럼 곱게 깔렸다.미국 워싱턴 D.C.에서 매년 열리는벚꽃축제의 주인공도 바로 이 콴잔벚나무라고 한다.
봄꽃이 물러가고 여름 신록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계절이다. ‘나무 할아버지’ 고(故) 민병갈 선생이 설립한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의 녹음도 한층 짙어졌다.

잎 색깔이 아이보리에서
연두빛으로 바뀌고 있는 삼색참죽나무.
1970년대에 심어 어느덧 마흔 살이 넘은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늦봄의 정취에 취한 꽃이 점점이 화사했다. 색이 고와 차라리 꽃이라 믿고 싶은 잎사귀도 있었다.

다만 수목원을 찾는 이들의 서툰 사랑법이 아쉬웠다. 밟히고 꺾어져 초목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봄, 천리포는 꽃이어라
생전 수선화를 돌보던 민병갈 선생
붓글씨를 곧잘 쓴 민병갈 선생은 말년에 즐겨 암송하던 시 한 수를 남겼다. 그의 호는 동여(東旅). ‘동쪽으로 여행 온 나그네’란 뜻이었다.

“임께서 내 마음 모르신들 어떠하며, 벗들이 내 세정 안 돌보면 어떠하리./…깊은 산 향 풀도 제 스스로 꽃다웁고, 삼경 밤 뜬 달도 제멋대로 밝삽거늘.”

지난 8일 찾은 천리포수목원은 꼭 이 시 구절 같았다.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 따뜻한 천리포에는 다양한 기후대의 식물이 뒤섞여 자랐다.

연못가에는 죽순처럼 땅위로 솟구친 낙우송 뿌리가 부들부들한 붓꽃과 어우러졌다.

잔가지가 버들처럼 늘어져 여름이면 초록 커튼이 쳐진다는 닛사나무는 블루베리와 마주보고 있었다. 귀화하기 전부터 ‘한국 토종’을 사랑했던 민병갈 선생이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게 미국에서 즐겨 먹던 블루베리다. 무더위가 찾아오면 푸릇푸릇 익은 열매가 잼도 되고 술도 됐다. 블루베리꽃은 열매보다도 작았다. 아기 손톱만 한 순결한 꽃이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목련을 만났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500여 종의 목련 중 400종 이상이 천리포수목원에서 자란다. 천리포에선 1년 내내 목련이 질 날이 없다고 한다. 국제수목학회가 아시아 최초로 이곳에 ‘명문수목원’ 훈장을 바친 것도 목련의 공이 컸다.

민병갈 선생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넋을 기려 유난히 아꼈다는 목련 ‘라즈베리 펀’은 비공개 지역에만 있었다. 그러나 아쉽지 않았다. 여염집 규수처럼 다소곳한 자색 목련 ‘옌’과 잎과 꽃이 함께 피는 노란 목련 ‘골든걸’의 우아한 자태가 마음을 빼앗았다. 이름 그대로 ‘나무(木)에 피는 연꽃(蓮)’다웠다.

“목련은 꽃이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떼처럼 펴요. 그래서 이름에 ‘새(Bird·버드)’가 들어간 게 많지요.” 최수진(32) 홍보팀장이 설명했다. 새 말고도 ‘별(Star·스타)’이나 여자이름이 들어간 게 많았다. 스타워즈·옐로버즈·엘리자베스…. 초여름 연두색과 보라색 꽃을 피운다는 목련의 이름은 씩씩한 ‘우즈맨(Woodsman·나무꾼)’이었다.

열흘 전 아기새의 발처럼 붉은 잎을 내민 칠옆수는 이제 손바닥만 해진 잎과 진분홍 꽃무더기에 뒤덮여 화려했다. 마취 성분이 있어 종종 말과 소를 잠재운다는 마취목 ‘스노드리프트’는 은방울 같은 흰 꽃을 피웠다. 자유롭게 피어난 꽃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꽃다웁게’ 그윽했다.

 잎이 꽃보다 아름다워

(상)가지 위에 노랑 새떼가 앉은 듯이 꽃이 피는 목련, 옐로버즈 (중)초여름 보랏빛 꽃이 피는 목련, 우즈맨 (하) 민병갈 선생이 즐겨 먹었던 블루베리의 흰 꽃. 여름이 되면 검푸른 열매가 먹음직스럽게 열린다
천리포수목원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잎 예찬자였다. 5월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은 전부 잎이었다.

삼림청장 은퇴 후 천리포수목원을 맡은 조연환(64) 원장은 ‘삼색참죽나무’에 감탄했다.

“잎 색깔이 환상적이에요. 5월에 핑크색으로 물들었다가 아이보리·초록색으로 바뀌며 6월을 맞죠. 민병갈 원장 생전에 내가 하도 예쁘다고 하니까 한 포기를 주셨어요. 근데 신기하죠. 천리포에 심어야만 그 빛깔이 나와요. 꽃보다 아름다운 나무지요.” 손녀딸 자랑이라도 하듯 그의 표정이 흐뭇했다.

최창호(42) 식물팀장은 “잎사귀는 다 좋은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굳이 꼽자면 민 원장님이 발견한 완도호랑가시나무? 아휴, 어떻게 하나만 말해요.” 민병갈 선생이 별세 전날 유언처럼 남긴 “수목원을 지켜 달라”는 말에 20년째 천리포수목원에 머문 그는 식물한테도 마음이 약했다.

“편백나무 중 잎사귀 끝에만 무늬가 들어간 게 있어요.” 식물학도 김완성(27)씨는 단숨에 대답했다. 지난 1월 1년 코스인 천리포수목원 전문가교육과정에 입학한 그는 온종일 수목원을 돌보며 얻은 팁을 귀띔했다. “꽃만 찾다보면 천리포수목원을 반도 못 즐겨요. 지금 천리포수목원에서 근무하시는 김근호 박사님께 대학 때 강의를 받았어요. 그때 들은 이야기를 이제야 하나씩 실감하고 있지요.”

문득 궁금해졌다. 민병갈 선생이라면 무슨 나무를 꼽았을까. 태풍을 맞고 화재를 당하고도 건재하게 살아남은, 소사나무집 옆의 회화나무? 처음 식재할 때 전문지식 부족으로 너무 좁게 심어 하늘을 향해 부채꼴처럼 퍼지며 자라고 있는 칡등나무 형제들? 아니면 역시 목련?

아마도 그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언짢은 풍경을 봤다. 여자아이가 철쭉꽃을 꺾어 자랑스레 귀에 꽂았다. 쑥·냉이를 뿌리째 캐 담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느라 아무도 발밑의 조개나물 꽃이 뭉개지는 줄 몰랐다.

“조만간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할지도 모릅니다.” 조연환 원장의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여행 정보

이른 아침 해무(海霧)에 잠긴 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을 즐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애완동물이나 카메라 삼각대, 큰 가방은 입구 안내소에 맡겨둬야 한다. 주류·도시락도 반입 금지다. 다른 관람객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초목을 꺾거나 파헤치는 행위도 금물이다.

시간을 맞춰 가면 숲 해설도 들을 수 있다. 월~목요일은 오전 9시 30분부터 매시 정각, 금~일요일은 매시 정각과 30분마다 수목원 가이드를 운영한다. 당일 사정에 따라 해설 시간은 변경될 수 있다.

입장은 4~9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능하며 폐장은 오후 6시다. 10~3월은 한 시간 빨리 폐장된다. 입장료는 성인 7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 주말·공휴일은 1000원씩 인상된다. 11~3월은 입장료가 2000원씩 싸다. 안내소 041-672-9310.

한 바퀴 둘러보고 떠나기가 아쉽다면 수목원 내 한옥 게스트하우스나 생태교육관에서 묵는 것도 방법이다. 천리포수목원 후원회원이 되면 수목원을 언제나 무료 방문하고 초목의 종자도 분양받을 수 있다. chollipo.org.

금강산도 식후경. 천리포횟집(041-672-9170)과 온양식당(041-672-5523)에서는 태안 앞바다의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온양식당은 된장찌개(6000원)·조개탕(8000원) 등 간단한 식사류도 판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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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