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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세상 천리포…6월엔 ‘민병갈 목련’ 핀대요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고(故) 민병갈 선생이 마지막 여생을 보낸 한옥 ‘후박집’. 선생은 떠났지만 그가 사랑하던 목련은 올해도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충남 태안 바닷가에 자리잡은 천리포는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모랫바람이 날리던 황무지였다. 그런데 1970년 벽안의 신사가 이곳에 후박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는 척박한 천리포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을 일궜다. 그가 바로 ‘나무 할아버지’ 민병갈(1921~2002) 선생이다.

1979년 한국에 귀화하기 전까지 그는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라고 불렸다. 독일계 이민자 3세인 밀러는 미국의 작은 광산마을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밀러가든에 세워진 민병갈 선생 동상
미군 통역장교로 일본에서 복무하던 밀러는 광복 직후 한국행을 자청했다. 한국의 호젓한 산세와 질박한 풍물은 처음임에도 낯설지가 않았다.

미군정을 거쳐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 그는 줄기차게 산을 탔다. 그때 산사의 스님에게 순우리말 나무 이름을 배웠다. 뽕나무·층층나무·다정큼나무…. 새삼 나무가 정겹다고 생각했다.

중년에 접어든 무렵, 밀러는 천리포에 좁은 땅뙈기(지금의 ‘밀러가든’)를 사들였다. 그는 노후를 보낼 아담한 농원을 꿈꿨다. 그러나 어렵게 구한 외국산 묘목은 천리포의 거친 풍토에 통 적응하지 못했다. 나무가 죽으면 그는 억장이 무너졌다. 목련만이 무던하게 자라 샛별 같은 꽃을 피웠다. 훗날 그가 목련을 깊이 아낀 까닭이다.

개발이란 명분으로 숲을 마구 파헤치던 시절, 밀러는 마치 투사처럼 나무에 몰두했다. 해송으로 방풍림을 조성하고 물을 대기 위한 인공 연못(현재의 ‘큰 연못’)을 팠다. 2만㎡ 남짓하던 부지는 30년 새 30배 가까이 넓어졌다. 목련·호랑가시나무·동백 등의 컬렉션은 세계적인 수준이 됐다. 이민자의 아들은 나무와 함께 천리포에 뿌리내렸다. 그리고 그는 한국 사람 ‘민병갈’이 됐다.

그가 평생 천리포수목원의 문을 닫아건 데는 이유가 있다. 독신이던 민병갈 선생에게 초목은 자식과 다름 없었다. 그는 자식이 다치는 걸 참지 못했다. 천리포수목원을 오직 나무를 위한 쉼터로 정해두고 고집스레 출입을 통제했다. 단 식물학도와 학자는 얼마든지 드나들었다. 수익이 없는 수목원은 살림이 빠듯했다. 1998년 후원회를 꾸렸지만 사정은 나아질 줄 몰랐다. “내가 죽으면 묘 쓸 자리에 나무 한그루라도 더 심으라”던 민병갈 선생은 암 투병보다 더 지난한 운영난에 시달리다 2002년 천리포 땅에 잠들었다.

고인의 전 재산을 유증받은 천리포수목원은 7년 뒤 일반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달리 자금난을 해결할 길이 없었다. 공개된 건 밀러가든뿐이지만 입장객은 조금씩 늘었다. 적어도 직원들 월급은 밀리지 않게 됐다. 하지만 나누는 기쁨만큼 훼손의 아픔도 커졌다.

지난달 8일 10주기를 맞은 그를 뒤늦게 수목장을 했다. 그는 당신이 처음 나무를 심은 밀러가든에서 사철 푸른 목련 ‘태산목’ 밑에 안장됐다. 초여름에 꽃이 피어 늦가을에 진다는 이 목련의 꽃말은 ‘자연의 애정’. 인파로 붐비는 밀러가든에서 ‘민병갈 박사의 나무’는 지킴이처럼 묵묵히 서 있었다.

글=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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